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회장의 장남 이맹희 씨(81·사진)가 동생 이건희 삼성 회장(70)을 상대로 거액의 상속 주식 반환 청구소송을 냈다.

14일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이씨는 “이병철 회장이 생전에 제3자 명의로 신탁한 재산을 이건희 회장이 다른 상속인에게 알리지 않고 단독 명의로 변경한 만큼 상속분에 맞게 주식을 넘겨 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씨가 반환을 요구한 재산은 삼성생명 주식 824만여주와 삼성전자 주식 20주 및 이익배당금 1억원 등으로 소송가액이 7138억원에 이른다. 그는 소장에서 삼성전자 주식 청구는 일부 청구로, 차명 주식 규모를 파악하는 대로 청구금액을 조정하겠다고 주장했다. 삼성에버랜드를 상대로도 일단 삼성생명 주식 100주와 1억원의 반환을 청구했다. 이씨는 이재현 CJ 회장의 부친이다.

◆삼성·CJ “민사소송일 뿐…”

이씨의 소송 제기 사실이 알려지자 삼성과 CJ는 당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민사소송이어서 그룹에서 공식적으로 할 말이 없다”면서도 “상속문제는 이미 다 끝난 것 아니냐”고 말했다. 1994년 제일제당(현 CJ)을 장손인 이재현 회장에게 넘기고 계열 분리하면서 상속문제가 모두 종결됐다는 얘기다.

삼성 측은 차명 재산은 이병철 회장의 유지에 따라 공동 상속인들이 협의 분할해 이건희 회장이 소유하기로 했고 상속회복청구권의 시효가 끝나는 제척 기간도 모두 지난 것으로 보고 있다.

CJ 측은 “이번 소송은 이씨 개인 차원의 민사소송으로 소송 사실도 보도를 통해 알았다”며 “소송이 삼성가의 갈등처럼 비쳐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문제가 원만히 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할 방침”이라며 양측 간 화해 중재자로 나설 뜻을 피력한 뒤 “이씨는 그룹 경영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재계에선 대기업 때리기가 극성인 마당에 자칫 이 소송이 재계 전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부추기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삼성과 법무법인 화우의 악연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번 소송에서 이씨 측을 대리한 화우는 백혈병으로 사망한 삼성반도체 근로자 세 명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달라”며 제기한 소송도 맡고 있다.

◆이맹희 씨는 누구

이씨는 비운의 황태자로 불린다. 동생인 이건희 회장이 삼성 경영권을 승계한 뒤 그는 20년 넘게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해외를 전전하고 있어서다. 이씨는 1970년대 초 삼성전자 부사장 등 공식 직함이 17개에 이를 만큼 그룹 내 역할이 컸다. 그는 1966년 삼성 계열이던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선친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실질적으로 그룹을 이끌기도 했다.

이씨는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주식을 직접 상속받지도 못했다. 이씨의 부인인 손복남 CJ그룹 고문 명의로 상속됐다. 1994년 제일제당의 분리·독립도 손 고문이 보유한 삼성화재 지분을 삼성이 갖고 있던 제일제당 지분과 맞교환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때도 이씨는 경영에서 손을 떼고 중국 몽골 등을 돌며 국내엔 거의 들어오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베일에 가려 있었던 이씨의 행적도 노출됐다. 소장에는 베이징 북부 창핑구 후이룽 관전이라는 이씨 주소가 명시돼 있었다.

김수언/김철수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