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지분 늘리는 국민연금, 이미 4대그룹 핵심계열사 2대주주
국민연금이 대기업 주식을 대거 사들이자 재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국민연금 측은 “투자수익을 위해 우량주를 매수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정치권이 재벌개혁의 도구로 ‘국민연금의 주주권 강화’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이 선량한 투자자로서 권리와 의무를 행사해야 하며 정치적 목적으로 주주권을 남용해선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연금 대기업 지분 확대

국민연금은 지난해 하반기 삼성전자 지분을 종전 5%에서 6%로 확대했다. 이로써 삼성전자의 최대주주인 삼성생명 지분율 7.21%(작년 9월 말 기준)에 바짝 다가섰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은 3.38%로 국민연금의 절반 수준이다.

국민연금은 현대차그룹 계열사에서도 주요 주주로 올라섰다. 현대차의 지분율은 5.95%로 정몽구 회장(5.17%)보다 높다. 기아차 지분율은 7.04%로 높아져 현대차에 이어 2대주주로 올라섰다.

국민연금은 또 LG전자 LG화학 SK텔레콤 SK이노베이션 등 4대 그룹 계열사 지분을 확대함으로써 2대주주의 지위를 강화하고 있다.

금융회사는 이미 국민연금의 ‘지배’하에 있다. 국민연금은 KB금융 지분 6.86%를 보유, ING를 제치고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신한금융도 국민연금이 7.59%의 지분율로 최대주주 자리를 차지했으며 우리금융은 예금보험공사에 이어 2대주주(5.07%)다. 하나금융 지분율도 9.35%로 끌어올렸다.

◆주주권 행사…긴장하는 재계

국내 최대 기관투자가인 국민연금이 국내 대표기업 지분율을 높이는 것은 건전한 자본시장 육성을 위해 바람직한 일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투기적 매매에 따른 시장 변동성을 줄일 수 있고, 대기업의 배당금도 결국 국민의 손으로 돌아온다는 점에서다.

그럼에도 재계가 긴장하는 것은 국민연금이 정치바람을 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조차 대기업 간 거래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방지 등을 위해 국민연금을 이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곽승준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장은 지난해 국민연금의 주주권 강화 방안과 관련, “일정 지분을 확보한 기업에 사외이사를 파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전광우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은 최근 “사외이사 파견을 국민연금이 직접 나서서 요구한다기보다 기업 측에서 요청해오면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아직 주주권 행사에 본격 나서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주총 안건 2770건 가운데 152건(5.5%)에 대해서만 반대했다.

하지만 기업들은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사외이사 파견은 아니더라도 어떤 식으로든지 주주권 행사가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주주권 행사란 사외이사 후보 추천을 비롯해 주주대표 소송, 주주제안권, 이사해임 청구권, 임시주총 소집권, 장부열람권 등 다양한 형식의 감시권한 행사를 말한다.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 안돼”

한 자산운용사 사장은 “국민연금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그리고 주주가치 제고를 목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는 일은 바람직하며 권고해야 할 일”이라면서도 “정치적 목적을 위해 주주권을 동원해 기업을 압박하는 것은 가장 경계해야 할 대목”이라고 강조했다. 잘못된 주주권 행사는 주식가치를 훼손시켜 국민연금의 손실, 나아가 국민의 재산상 손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진모/이호기 기자 jang @ 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