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젊음'이 기적을 만든다
“북한에 남아있는 형은 어떻게 됐니?” 입학시험 면접에서 엉겁결에 던진 질문에 H군은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태국 주재 북한 대사관에 근무하던 부모가 급거 귀순하면서 기숙사에서 따로 지내던 H군은 북한 공관원에 붙잡혔다. 유엔 고등판무관이 개입하는 곡절을 겪고 어렵게 서울에 도착했다.

새터민 청년은 대학생활도 어렵다. 경제적 어려움뿐만 아니라 공산주의 중등교육 선행학습도 장애다. 필자의 전공인 회계학은 새터민 학생이 특히 어려워한다. 기업이익 개념도 어렵고 이익을 자본주가 차지하는 전제도 본능적으로 혼란스럽다. 무장간첩으로 남파됐거나 러시아 유학 중 귀순한 학생들은 수차례 낙제점을 받아 재수강했다. H군은 시장경제체제 경험도 있고 집중력도 뛰어나 최고 성적을 받았고 재학 중 공인회계사 시험에도 합격했다.

회계법인에 근무하면서 학비를 저축해 하버드대 경영학석사(MBA) 과정에 지원했고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학해 장학금을 받으며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미국 유학 중 얻은 아들 출생증명서에는 ‘평양의 부와 서울의 모, 그리고 보스턴의 아들’에 대한 출생지와 성명이 프린트돼 있다. H군은 현재 홍콩의 국제 금융회사에 근무하고 있다. 북한이 호전성을 버리고 경제개방에 본격적으로 나서면 북한을 가장 잘 아는 전문가로서 최선의 국제자금을 중개할 자질을 갖추는 것이 꿈이다. 그날이 오면 북한의 형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적을 믿고 오늘도 열심히 뛰고 있다.

정주영 현대 창업주는 어려운 환경에서 가장 많은 기업을 일으켜 세웠다. 정 회장은 청년 시절 공사판 등짐을 나르기도 했고 정미소 일꾼생활도 겪었다. 30대 초반 자동차 수리점 개업을 개시로 사업영업을 계속 확장했다. 건설, 자동차, 조선을 비롯해 정 회장 손을 거친 방계회사까지 합치면 실로 ‘창업 기적’의 드라마다.

한국세무학회는 중국 국세청 간부 중심의 중국세무학회와 국제학술대회를 매년 개최하는데 필자가 학회장을 맡았던 2006년에는 경주에서 학회를 열었고 현대중공업을 방문했다. 선박 건조시설 시찰을 마친 후 영빈관에서 만찬이 있었다. 만찬장에서 중국 대표가 지금까지 건조한 선박 총 톤수가 얼마인지를 질문했다. 순간 배석한 임직원들이 매우 당황해 했다.

선박은 종류가 다양해 건조실적을 총 톤수로 합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필자가 임기응변으로 나서 요즘 ‘해수면 상승’ 현상이 심각한데 이는 현대중공업이 만든 배가 너무 많이 떠있기 때문이라고 둘러댔다. 중국 대표는 중국 사람보다 과장이 심하다고 박장대소하면서 ‘정주영 회장이 기적을 만든 것은 틀림없다’는 찬사로 화답했다.

국내사업에 주력하던 정 회장은 오일쇼크로 유가가 폭등하자 중동 석유달러를 벌어들여야 경제성장이 가능하다며 중동진출에 나섰다. 정 회장은 공사현장을 돌면서 근로자를 격려했고 책임자를 독려해 획기적 공기단축을 이뤄 이익과 평판을 쌓았다.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한국이 유가상승 최대수혜국이 되는 기적을 이룬 것이다.

유가가 상승하면 에너지 효율을 고려해 신형교체가 증가할 수밖에 없는 선박과 자동차 부문에도 진출해 유가변동에 대한 헤지 효과가 담보되는 산업구조를 정착시킨 것도 정 회장의 공로다.

기업가로서의 정 회장은 언제나 청년이었다. 새벽부터 부지런히 일했고 청년근로자와 씨름과 노래로 소통했다. 국회 청문회에 불려 다닌 후유증으로 칠순을 넘긴 나이에 정치에 뛰어 들었고 그 이후 젊음을 잃었다.

총선과 대선이 겹치는 ‘정치의 해’를 맞아 정치권의 기업가 때리기가 치열하다. 그러나 일자리를 통해 먹거리를 제공하는 기업가 없이는 국가경제를 꾸릴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정주영 창업정신에 젊은 팔로어가 구름처럼 모여야 한국경제의 기적을 재현시킬 수 있다.

이만우 < 고려대 교수·경영학 / 객원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