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16일(현지시간)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의 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인 ‘AAA’에서 ‘AA+’로 한 단계 낮췄다. EFSF 재원의 20%를 떠맡고 있는 프랑스가 지난 13일 AAA 등급을 잃은 데 따른 후속 조치다.

EFSF는 유로존 회원국들의 지급보증을 바탕으로 채권을 발행한다. 조달한 자금은 유로존 재정위기국 지원에 쓰인다. 현재 EFSF의 대출한도는 4400억유로다.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신들은 등급 강등으로 이 한도가 2600억유로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되면 채권 발행 비용이 올라가고, 자금 압박에 시달리는 EFSF가 채권 발행액을 줄일 가능성이 높다.

EFSF의 가용 자금 규모를 유지하려면 독일 네덜란드 핀란드 룩셈부르크 등 최고 등급 4개국이 보증을 늘려야 한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EFSF의 대출 여력 유지를 위해서는 ‘AAA’ 등급 국가들이 추가적인 자금 투입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이날 “독일의 보증 규모는 충분하다”며 보증액을 늘리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17일 EFSF는 15억유로 규모의 6개월 만기 채권을 성공적으로 발행했다. 그러나 유럽 정상들은 EFSF를 대체할 유럽재정안정메커니즘(ESM) 도입 논의를 서두르고 있다. 헤르만 반롬푀이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이날 마리오 몬티 이탈리아 총리와 회담을 가진 후 “3월 회의 안건인 ESM 문제를 이달 30일 정상회의 때 논의할 것”이라며 “ESM 재원 규모 등에 대한 토론이 지체없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시기구인 EFSF는 회원국이 지급보증을 해주는 방식이지만 상설기구인 ESM은 회원국에서 직접 출자를 받아 운영한다. 대출 한도도 5000억유로로 EFSF보다 600억유로 더 많다. 내년 출범 예정이었던 ESM은 오는 7월 운영에 들어갈 계획이다.

하지만 ESM 규모를 놓고 회원국 간 의견이 맞서 난항이 예상된다. EU집행위원회는 ESM과 2013년 폐지 예정인 EFSF를 병행 운영해 구제금융 자금을 늘리자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독일은 “ESM과 EFSF를 동시에 운영하더라도 총 대출 한도는 5000억유로로 제한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다만 잇단 등급 강등에 따른 시장 충격을 우려, 독일이 유화적인 태도로 돌아서 주목된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