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현대자동차, LG, SK 등 4대 그룹이 16일 시스템통합(SI)·광고·건설·물류 등 4개 분야 상장 계열사의 사업 프로젝트 발주와 관련, 경쟁입찰을 확대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은 것은 반기업 정서로 무장한 여론의 ‘뭇매’를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게 재계의 공통된 토로다.

◆경영효율 대신 사회적 타협

경영 효율성이나 기업 보안 등의 측면에서 볼 때 이들 업종은 내부거래가 많을 수밖에 없는 특성이 있음에도 사회 전반의 반(反)대기업 정서가 워낙 커지고 있어 양보가 불가피했다는 지적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정치권과 시민단체가 대기업을 양극화의 주범으로 몰아붙이며 대기업 때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마당이라 어쩔 수 없었다는 얘기가 많다”고 전했다.

대기업들은 지금껏 정부와 정치권이 SI와 광고, 건설, 물류에서 대기업 계열사 간 일감몰아주기가 만연해 있다고 비판할 때 “영업기밀 보호와 경영효율 측면에서 내부거래가 많을 수밖에 없는 업종으로 월마트나 도요타, NTT 등 해외 대기업들도 마찬가지”라고 반박해왔다.

SI만 해도 그룹 전체의 정보시스템을 다뤄야 하는 특성상 외부에 의존하게 되면 기밀노출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다. 신제품 출시에 앞서 제품정보를 다루는 광고 분야도 마찬가지다. 물류와 건설은 비용 절감과 경영효율 관점에서 들여다봐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재계 관계자는 “상생발전을 반대하자는 게 아니라, 냉정하게 따져볼 때 일부 기업의 잘못된 내부거래 관행을 전체 대기업의 문제로 호도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경쟁입찰 확대가 말로는 그럴싸해 보이지만, 현실적으론 경영효율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납품권을 둘러싸고 정치권 개입 등 추문이 터져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공정위와 싸우면 우리만 손해”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은 4대 그룹 부회장단과 간담회를 가진 뒤 “30대 그룹에도 (4대 그룹과 같은) 방안이 확산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4대 그룹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모양새의 일감몰아주기 축소 결의 이벤트를 열기 위해 지난해 12월부터 공을 들였다. 때로는 팔을 비틀며 압박했고, 때로는 한발 물러서며 간담회 참석을 독려했다.

이날 공정위가 당초 모범거래 관행으로 예시했던 △1억원 이상 계약과 △연간 전체 거래액의 50% 이상을 경쟁입찰에 부치며 △계약물량의 30% 이상을 중소기업에 발주한다는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정하지 않은 것도 이벤트 성사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위와 싸울 수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공정위는 그러면서도 압박을 늦추지 않고 있다. 김 위원장은 당장 “이번 공생협력으로 공정위가 진행하는 일감몰아주기 조사나 처벌이 완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기업들로선 경영효율이나 기밀보호 등과 무관하게 공정위 눈치를 보며 외부에 ‘숫자’로 내보일 수 있는 성과를 만들어내야 하는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대기업들이 내부거래위원회를 줄줄이 설치하기로 한 것과 관련해서는 퇴직 공무원 일자리 만들기용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