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바, 핵심사업 전략특허 확보 못하면 임원 문책
기업에 경쟁은 피할 수 없다지만, 경영환경이 글로벌화하면서 처절할 지경이다. 경쟁 수단도 과거에는 가격과 기능, 품질 등 측정 가능한 것에서 특허, 디자인 등 측정 불가능한 영역으로 급속히 바뀌고 있다. 경쟁의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경쟁력을 더욱 키워가는 선진 기업들의 특허경영 소프트웨어를 살펴보면 국제특허전쟁을 이해하고 우리 기업들의 나아갈 방향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깡통으로는 우리를 못 지킨다

GE, IBM, 히타치 등 선진 기업들은 제조업을 없애거나 비중을 급속히 낮추면서 서비스산업으로 이동하고 있다. IBM은 PC사업부문을 중국 레노버에 매각하는 등 제조업에서 손을 떼고 서비스컨설팅기업으로 거듭났다. 흔히 말하는 기능 위주의 제품(깡통) 제조는 중국이나 브라질, 베트남 등 자원이 풍부하고 제조단가가 싼 개발도상국으로 이동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컨셉트의 휴대폰이나 단순히 이것들을 연결해주고 회선 사용료나 받는 통신사업은 더 이상 우리를 지켜주지 못할 것이다.

애플 등이 야심차게 추진 중인 iCar, i키친, iShip 등이 현실화하면 지금과 같은 기능 위주의 자동차, 가전, 선박도 더 이상 우리의 효자산업이 되지 못할 것이다. 기능 위주 제품에 특허, 디자인 등의 지식재산 혼(魂)을 불어넣어 모방이 불가능하게 차별화하거나 스토리가 있는 콘텐츠와 연결, 애플처럼 제품과 콘텐츠를 이중으로 파는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특허, 디자인, 소프트웨어, 콘텐츠 등의 무형 지식재산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게 시급하다.

#미국 특허등록 세계 1위 IBM의 전략

IBM은 2010년 미국 특허등록 5896건을 기록, 18년 연속 세계 최고의 발명·창조 기업임을 과시했다. 2위인 삼성이 기록한 4551건을 압도하고 있다. IBM은 최근 수년간 비즈니스 모델을 대폭 수정, 하드웨어 중심의 제조업에서 정보기술(IT) 관련 서비스 중심으로 바꿨다. 제품이나 부품의 매출액을 지향하지 않고 서비스로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것. 5만건 이상의 특허와 370명이 넘는 특허변호사를 고용하고 있는 IBM은 일관성 있게 특허를 취득, 다음과 같은 특허경영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첫째, 자체사용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외부에 라이선스를 빌려줘 기술료(로열티)를 취하는 오픈 이노베이션을 활용하고 있다. 효율적인 라이선스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발명의 특허출원 심사시 라이선스 아웃 가능성에 최고의 비중을 두고 있다. IBM의 라이선스 기술료 수입은 연평균 13억~17억달러에 이른다. 이런 기술료 수입의 경영 기여도는 회사 순이익의 20%가량을 차지할 정도다.

둘째, 다수 기업에 의해 특허 침해 제소를 받는 현실에 비춰 타사에 의한 침해 제소를 자제시키고, 설사 소송이 걸리더라도 리스크를 축소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이를 위해 사내 특허전문변호사가 연구개발자와 직접 대응해 장래 특허관련 소송 가능성을 시야에 넣으면서 특허전략을 추진한다.

#ARM의 특별한 지식재산 사업

‘WINTEL’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window)와 인텔(Intel)의 합성어다. 지난 30여년간 컴퓨터(PC) 산업을 지배해 왔고, 지금도 전 세계 PC의 80%가 ‘윈텔’이다. 가장 큰 시장 지배력을 가진 조합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윈텔이 점차 시장 지배력을 잃으면서 GARM 시대가 온다고 전망했다. GARM은 구글(Google)과 ARM의 조합을 의미한다. 현재 모바일 CPU 시장은 대부분 ARM이 장악하고 있다. ARM은 1990년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시작한 작은 벤처기업이었지만, 반도체칩의 설계에 필요한 지식재산(IP) 라이선스로 세계적인 기업이 됐다.

한국에서 생산되는 반도체 칩 설계에 소요되는 IP의 절반 이상이 ARM 것이다. 라이선스 제공에 대한 기술료만으로도 수천억원의 수익을 올린다. 이것을 제품 매출로 환산하면 수십조원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ARM은 초창기 라이선스용 IP를 직접 개발했지만 지금은 대부분 인도, 중국 등에 위탁 또는 공동연구로 개발하면서 라이선스 사업을 위한 IP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다. 말하자면 시대의 유행인 오픈 이노베이션을 활용하는 것이다. ARM은 자신의 핵심적 비즈니스 모델인 라이선스를 정교하게 개발, 6단계의 라이선스 전략을 전개해 기술료 수익을 극대화한다. 1단계에서 6단계로 갈수록 기술료는 점점 올라가는 피라미드 구조다.

#철옹성 특허망 갖춘 토토(TOTO·東陶)

미래 유망사업을 발굴하는 것은 기업의 희망이자 절박한 경영과제다. 그런데 유망한 품목을 발굴했어도 경쟁사에 빼앗기지 않으려면 특허전략을 잘 구사해야 한다. 유망 품목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죽 쑤어 개 주는’ 꼴이 될 수도 있다. 자본과 특허에서 밀리면 의미가 없다.

일본의 토토는 자신이 발굴한 유망 광촉매사업을 독점사업으로 만들기 위해 특허요새를 구축했다. 상층부의 핵심특허를 중층·하층부의 수백, 수천의 관련 특허들이 둘러싸고 보호하는 피라미드식 구조를 형성한 것. 설사 중층부, 하층부의 일부 특허들이 무효가 돼도 상층부의 핵심특허는 지장을 받지 않는다. 난공불락의 요새를 방불케 한다. 점(点)이 아닌 면(面)을 형성하고 있는 특허가 강한 특허다.

토토는 강력한 특허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이것을 이용해 사업화한다. 또 1997년 5월 자회사 TOTO프런티어리서치(TFR)를 설립, 특허기술 라이선스사업을 경영의 핵심 축으로 삼고 있다. TFR은 국내외적으로 80여건의 기술이전 라이선스 사업을 성공시켜 막대한 기술료 수입을 올리고 있다. 피라미드식 특허망 구축에 의해 광촉매 기술을 상품에 응용한 다수의 발명이 특허 출원돼 있는 덕분이다.

타사에서 광촉매 기본원리를 이용한 기술을 상품화할 경우 침해를 제기할 수 있는 특허를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침해 여부 판단이 명확하지 않고 미묘한 경우에도 피라미드의 상층부 어딘가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경쟁사로서는 토토의 광촉매 관련 모든 특허를 검토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같이 계층적으로 특허망(특허군집)을 구축함으로써 경쟁사는 특허망을 피해가기가 쉽지 않다.

#히타치, 특허 없으면 주력사업도 포기

히타치는 연구개발 초기 단계부터 지식재산권화를 유도, 3중의 강한 특허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다. 경영전략, 연구개발 전략 및 지식재산전략의 3개 전략을 효과적으로 융합, 어떻게 빈틈이 생기지 않도록 할 것인가에 관심을 두고 있다. 한 가지 기술에 핵심·주변 기술을 더해 수백 건의 특허로 난공불락의 요새를 이룰 때 엄청난 위력을 가질 수 있다.

히타치는 주력사업에 강력한 특허를 집중해 적어도 5개 이상의 5FT(화이팅 테크놀로지 등 경쟁사를 압도할 수 있는 핵심 특허기술을 지칭) 확보를 의무화한다. 이에 이르지 못하면 사업철수를 고려할 정도로 ‘기술의 히타치’를 강조한다. 이런 특허경영전략을 ‘플래그십(기함) 특허활동’이라고 부른다.

기함(旗艦)은 모함(母艦)을 기초로 전방의 첨병, 후방의 엄호 및 수송, 좌우 측면의 호위함, 상공의 전투기 호위를 받으며 정해진 방향으로 항진한다. 따라서 모든 구성원들은 독자방향이 인정되지 않고 전략적으로 정해진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히타치의 연구·개발 및 특허활동도 주력사업으로부터 이탈, 방향성 없는 독자 활동을 용납하지 않는다. 히타치의 이런 특허활동 및 지식재산전략의 핵심은 지식재산권본부에 속하는 지식재산전문 인재들이다. 그중에서도 80% 정도를 차지하는 특허개발의 귀재인 특허 엔지니어의 존재가 핵심이다. 다소 부족한 발명일지라도 이들의 손을 거치면 가치 있고 강력한 특허군집으로 거듭난다. 특허 엔지니어를 육성하는 데는 약 10년 이상 소요된다.

#특허전략에 패한 장수, 용서하지 마라

일본의 세계적인 기업 도시바는 특허품질경영으로 유명하다. 2002년부터 특허 숫자가 아닌 특허품질로 승부한다는 전략으로 연평균 6000건 내외의 발명을 특허출원하지만 동시에 핵심사업의 전개에 꼭 필요한 전략특허는 반드시 확보하도록 의무화한다. 또 전략특허의 확보여부를 전사의 리스크관리 차원에서 정기적으로 감사하고 있다.많은 투자가 수반되는 핵심전략사업을 전개할 때 그 사업을 지켜줄 전략특허를 확보하지 못하면 특허침해 소송에 걸리거나 사업이 중단될 수도 있다. 이는 곧 회사의 생존문제로 연결될 수도 있다. 지금까지 기술이라는 이유로 감사의 무풍지대에 있던 전략특허의 확보 여부를 정책감사로 실시하고, 미확보에 대한 책임을 엄격히 묻는다.

#특허 있으면 중소기업에도 희망이…

일본의 홋카이도 구시로에 소재한 중소기업 닛코는 조개류의 일종인 가리비 껍질을 자동으로 제거할 수 있는 장치(기기) 하나로 세계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이 장치는 숙련공의 수작업으로 제조가 가능하지만 효율성에 한계가 있고, 품질 및 위생에도 문제가 있었다. 또 세계 시장규모가 작아서(연간 130억원 정도) 중소기업만이 참여할 수 있는 분야다.

닛코는 시장은 작지만 성공확률이 높은 아이템이라고 보고 자동화기술 개발에 투자, 일본 특허를 획득했다. 수요가 있다고 예상되는 미국과 캐나다 등에도 국제출원을 해 세계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그 결과 막강한 가격 결정력을 갖게 됐다. 10억원 정도를 투자해 잠재적 경쟁업자들의 진입을 저지하고, 연간 수십억원의 순이익을 올리게 된 것도 특허에 의한 지식재산 경쟁력을 확보한 덕분이다.

최근 한·미 FTA(자유무역협정)가 우여곡절 끝에 국회 비준을 거치면서 농민뿐만 아니라 기술과 자본력이 약한 중소기업들도 걱정된다. 그렇다고 한탄할 일은 아니다. 일본의 닛코처럼 특허와 기술력을 쌓는다면 승산이 있다. 미국의 거대기업이 손대지 못하는 틈새 분야가 많을 것이고, 한국인의 두뇌와 열정을 특허와 콘텐츠 등 지식재산으로 승화시킨다면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다.


도시바, 핵심사업 전략특허 확보 못하면 임원 문책


허재관 특허법인 이지·(주)이지펙스 부사장
gbo1196@gmail.com

△IPMS 초대 회장 및 대한변리사회 사무총장 역임 △현 고려대 겸임교수(캠퍼스CEO과정),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저서 ‘기술거래가이드’ ‘지식재산전략’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