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없는 나노엔텍, 다국적 바이오社와 '맞짱'
‘소리없이 강한’ 바이오 벤처기업 나노엔텍(대표 장준근)이 주목받고 있다. 이 회사는 혈액과 세포의 내용을 분석해 건강상태를 진단할 수 있는 칩 세트와 소형 리더기를 만드는 의료기기 제조업체다.

업력 10년차인 이 회사가 주목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세 가지가 있고, 세 가지가 없기 때문이다. 독보적인 기술력과 명확한 비전, 괴짜 리더는 있지만 롤모델(role-model)이 될 만한 회사가 없고, 영업팀과 정해진 출퇴근 시간을 찾을 수 없는 게 이 회사의 특징이다.

나노엔텍의 생산품은 크게 특허기술과 의료장비 두 가지다. 핵심은 ‘랩 온 어 칩(lab on a chip)’ 기술이다. 쉽게 말해 연구실에서 중후장대한 장비로 오랫동안 분석해야 할 일을, 칩 하나로 간단히 해결한다는 개념이다.

신용카드 크기만한 칩세트는 극미세 반도체 회로기술을 이용해 플라스틱 카드 위에 회로를 새기고 거기에 화학 물질을 입혀 만든다. 여기에 혈액이나 세포를 얹어 소형 리더기에 집어 넣으면 건강 상태를 바로 체크할 수 있다. 대형 연구실을 칩위에 구현했다는 의미다. 이 회사는 이 분야에서 120개의 특허 기술을 갖고 있다. 특허 개수나 수준면에서 독보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어느 정도 수준의 기술일까. 이 회사는 2009년 그동안 개발했던 특허기술 2개를 시장에 내놨다. 운영자금이 필요해서였다. 즉각 반응이 왔다. 미국의 거대 의료업체인 라이프테크놀로지사가 200억원에 매입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장 대표는 “엄청난 매각현금이 하루 아침에 들어와서 이를 공시했더니 오히려 주가가 떨어졌다”고 말했다.

나노엔텍은 지난 8월 미국의 거대 다국적 생명공학기업인 바이오라드를 상대로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바이오라드가 자사 기술을 베꼈다는 내용이었다. 장 대표는 “현재로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독보적인 기술이기 때문에 승소를 자신한다”고 말했다.

나노엔텍은 이런 기술로 2008년부터 6개의 제품을 만들고 있다. 95% 이상이 수출된다. 지난해 매출은 151억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수출된 제품은 국내 병원에 두세 배 가격에 다시 역수입된다. 국내 영업은 따로 하지 않는다.

이 회사는 기술개발에만 올인한다. 2000년 설립 후 꼬박 8년여간 기술개발에만 700억~800억원을 투입했다. 지난달 말 현재 직원 수는 82명. 이 중 70%가 반도체, 화학, 생물, 기계 등 각 분야 연구개발자들이다. 영업 직원은 하나도 없다. 억지로 제품을 세상에 알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특허기술과 제품을 학술지나 세미나 등에서 발표, 바이어들이 제발로 찾아오게 만든다. 대기업이 영업을 해주겠다고 자청하기도 한다. SK텔레콤은 지난 2월 이 회사의 잠재력을 확신하고 250억원을 투자하며 해외 영업분야 협력 파트너로 참여했다.

장 대표는 “혈액·세포분석을 통해 질병을 예방하는 소형 바이오 의료기기 분야에서 경쟁자는 없다”고 잘라말했다. 이런 회사를 이끄는 장 대표는 범상치 않은 캐릭터를 갖고 있다. 주위에선 괴짜라고 부른다. 장 대표를 찾았을 때 집무실 책상 위에는 원효, 미학강의, 칸트와헤겔 등 의료 분야와 상관없는 다양한 책들이 수북했다. 그는 “이런 책들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