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바가지 같은 플라스틱 용기를 제조해 팔던 중소기업 락앤락이 2010년 1월 초 코스피시장에 상장, 1주일 만에 지분가치 기준으로 국내 20위권에 오르게 됐다. 최근에는 주가가 3만9000원대를 오르내리며 액면가의 78배를 기록하고 있다. 지분 54.01%(2970만주)를 갖고 있는 김준일 회장은 1조1600억원에 달하는 ‘주식부자’가 됐다. 밀폐용기 전문업체 락앤락의 브랜드 가치가 주식에 반영됐기 때문이다.

주부들의 락앤락 사랑은 김 회장의 브랜드 경영에 대한 노력의 결과다. 김 회장은 브랜드 경영의 중요성을 창업 초기부터 인식, 국내에서 321개, 해외에서 727개의 상표를 각각 출원했다. 기술별로 제품군을 나누고 상표군을 형성하는 등 브랜드 관리에 각별히 신경쓰고 있다. 이런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성장을 기대할 수 있었을까.

기업을 평가할 때 전통적으로 자본금과 생산시설, 인적자원을 중시하지만 요즘은 브랜드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의 다국적 기업인 필립모리스가 식품회사인 크래프트를 장부가격의 6배가 넘는 129억달러에 사들인 것은 브랜드 자산 가치를 인정해주는 좋은 예다.

# 브랜드는 영원하다…특허냐 브랜드냐

브랜드가 자산으로서 중요한 기능을 하는 것은 다른 지식재산권과 달리 영원히 소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허, 실용신안, 디자인은 일정한 존속기간이 지나면 다른 사람도 사용할 수 있다. 이와 달리 브랜드는 소유자가 존속기간 갱신을 통해 영구 독점할 수 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가치가 더 높아질 수 있다.

브랜드 경영에서 중요한 부분은 국내외에서 권리화하는 것이다. 마드리드 의정서에 의거한 국제출원을 할 경우 한 번의 출원으로 전 세계 84개 국가에서 각각 출원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세계지식재산권기구가 발표한 2010년 마드리드 국제출원 상위국가비율을 보면 독일 12.6%(5006건), 미국 10.4%(4147건), 중국 4.9%(1928건), 일본 4.0%(1577건)에 비해 한국은 0.9%(354건)에 그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마드리드 국제상표제도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기업들이 브랜드 경영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실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상표출원을 통해 권리를 확보하고 등록받은 후에도 관리·활용을 위한 투자가 필요하다.

# 권리 위에 잠자다가 망신당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막걸리 브랜드 ‘일동막걸리’ ‘포천일동막걸리’를 일본에서 2009년께 상표등록, 수출에 제동이 걸렸던 적이 있다. 국내법상 특정 지명은 상표권을 획득하기 어렵지만, 해외에서는 그 나라 국민에게 특정 지명으로 인식되지 않는 이상 상표권을 등록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등록권리자로부터 상표권을 양도받아 잘 마무리 됐지만, 국내 전통산업 종사자들에게 타산지석이 될 수 있는 사례다.

중국 회사도 예외는 아니다. 중국 최대 인터넷 검색엔진 바이두가 한국에서 상표권을 선점당해 해외 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바이두의 상표출원 전에 제3자가 같은 업종으로 출원, 등록받아뒀기 때문이다. 바이두는 일본에 진출할 때 baidu.co.jp 도메인을 미리 확보하지 못해 뒤늦게 법적 수단을 통해 어렵게 확보하는 등 브랜드 관리 소홀로 곤욕을 치렀다.

상표등록을 받을 때는 등록 범위를 어떻게 정하는가가 중요하다. 상표등록은 상품류를 지정 출원해야 하며, 상품류는 45개류로 나뉘어져 있다. 가령 휴대폰에 사용할 상표라면 상품류 구분 9류를 지정해야 한다. 다른 영역의 상품에 대해서는 상표권을 행사할 수 없다. 따라서 출원 시에 향후 확장 가능한 사업영역까지 고려해 상품류를 정해야 한다. 시기를 놓칠 경우 확장한 사업영역에 다른 사람이 미리 등록할 경우 다른 상표를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 꼬꼬면, 하늘을 날 수 있을까

꼬꼬면은 개그맨 이경규 씨가 KBS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에서 선보인 요리법에서 힌트를 얻었다. 한국야쿠르트가 이를 제품화해 시판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이경규 명의의 ‘꼬꼬면’ 상표는 라면류를 지정상품으로 해 최근 특허청에서 인정됐다. 향후 식당체인업으로 영역을 확대해나갈 계획이 있다면 식당프랜차이즈업에 대해서는 상표권을 확보해둘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제3자가 이미 식당프랜차이즈업에 출원해 문제가 됐다가 최근 자진 취하하면서 해결됐다.

세계 최대 피자 배달 전문 브랜드인 도미노피자는 한국에서 제3자가 종이 상자에 대해 ‘도미노피자’ 상표를 출원, 피자 배달에 필수적인 포장박스에 상표를 사용하지 못하게 될 위기에 처했다가 도미노피자의 저명성을 주장해 출원 상표를 소멸시키는 해프닝을 겪었다.

이 같은 상표등록 실패례와 달리 소녀시대의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는 ‘소녀시대’ 이름을 딴 상표(소녀시대, 소시 등)를 CD플레이어, MP3 같은 음악 관련 상품부터 화장품, 의류, 시계, 가방 등까지 70개 이상 출원했다. 최근 소녀시대의 이름을 딴 ‘소시’라는 상호로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려던 사람이 사용하지 못한 사례가 있다. SM엔터테인먼트는 상표 등록에 따른 브랜드 가치 보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 상표에도 쓰레기는 있다

상품류를 지나치게 많이 지정해 출원하는 것도 자제해야 한다. 사용할 범위를 넘어 지나친 확장은 저장상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이는 대기업의 상표담당부서에서 골칫거리가 되기도 한다. 저장상표란 사용하지 않으면서 등록해 두는 상표를 말한다. 상표는 등록 후 10년마다 갱신해야 하고, 비용이 들어간다. 사용하지 않는 상표는 또 다른 사람의 상표선택 기회를 빼앗는 것이어서 상표법상 취소 대상이 되기도 한다.

등록된 브랜드에 대해서는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타인의 무단사용을 방치해 둘 경우 초코파이 같이 일반명사가 돼 무효가 되기도 한다. 브랜드 인지도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락앤락은 중국산 짝퉁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5대 짝퉁근절법’이란 짝퉁 방어책을 제시, 짝퉁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주력함으로써 브랜드 관리에 있어서 다른 기업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브랜드 관리를 위해 변리사 등 외부 전문가의 전문 서비스를 받는 것뿐만 아니라 사내에서도 브랜드 관리를 위한 전담팀 운영, 직원교육 등 자체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기업 내에서 상표변리사를 고용하는 등 적극적으로 브랜드 경영을 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 한·미 FTA 협정으로 소리·냄새도 상표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서 조만간 소리와 냄새도 상표로 인정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현행법에서는 시각적으로 표현되는 상표만을 인정하고 있지만, 한·미 FTA 협정문에는 소리상표 및 냄새상표를 보호해야 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SK텔레콤의 효과음 “띵띵띠디띵” 과 KT의 “두두두 올레” 같은 멜로디를 상표로 보호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미국은 1990년 자수 및 바느질용 실이 지닌 특징적 냄새에 대해 냄새상표의 등록을 받아들이면서 여러 가지 냄새상표가 등록됐다. FTA가 발효된 이상 우리나라 기업들도 소리상표나 냄새상표에 관심을 두고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SM '소녀시대' 상표권 70개 넘어…기업 평가 잣대는 '브랜드'
자동차나 핸드폰 등의 완제품에 들어가는 부품회사도 경쟁업체와 차별화하기 위해 기술 브랜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겉으로 보이지 않는 제품이라고 브랜드를 등한시했다가 자칫 경쟁업체들이 유사 상표로 시장을 공략할 경우 속수무책이 된다.

인텔은 ‘펜티엄’이란 기술 브랜드를 등록하고 ‘인텔 인사이드’ 캠페인을 벌였다. 외부로 표출되기 어려운 점을 감안, 컴퓨터 회사가 완제품인 컴퓨터를 광고하면서 중간에 인텔 인사이드 마크와 효과음을 일정시간 노출하면 인텔의 부품가격을 할인해 준 것. 이런 캠페인에 대해 “부품 회사의 미친 짓”이란 지적도 있었지만, 인텔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큰 효과를 봤다. ‘기술 브랜드’도 차별화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김희진 < 특허법인 이지 상표디자인팀장·변리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