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별 산업별 제각각…상대국 검증요구도 늘어
전문가 "정부·기업 손잡고 노력해야"

한미 FTA가 발효되면 우리 수출기업이 미 세관의 제재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세청의 우려는 설득력이 있다.

우리 정부가 유럽연합(EU), 칠레, 인도 등 여러 나라와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경제영토를 확장하고 있지만 나라마다 제각각이고 복잡한 원산지 규정으로 기업들은 FTA의 '단감'을 맛보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FTA의 기본 목표인 '관세 없는 자유로운 무역'의 경제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지금이라도 정부와 기업의 세심한 노력과 과감한 투자, 철저한 준비가 시급한 상황이다.

◇복잡한 원산지규정

FTA 원산지규정은 수출입물품의 원산지를 결정하기 위한 기준과 절차를 말한다.

관세철폐의 혜택을 제한해 국내 기업과 소비자를 보호하려는 조치다.

그만큼 원산지 증명방식은 나라마다 산업마다 복잡하다.

원산지를 확인하는 절차로 증명주체에 따라 기관발급제와 자율발급제가 있다.

수출국의 관세당국이나 발급권한이 있는 기관이 수출자로부터 신청을 받아 원산지규정 충족 여부를 평가한 뒤 원산지증명서를 발급해 주는 것이 기관발급제다.

자율발급은 수출자나 생산자가 자율적으로 물품의 원산지규정 충족 여부를 확인해 증명서를 수입국의 수입자에게 제출하는 제도다.

우리나라는 미국·칠레·유럽자유무역연합(EFTA)과는 자율증명제를, 싱가포르·아세안·인도와는 기관증명제를 채택하고 있다.

EU와는 수출자나 생산자 중에서 물품의 원산지 관리능력이 있다고 관세당국이 인증하는 원산지인증수출자제도를 운용한다.

FTA를 체결한 국가의 세관이 원산지를 검증하는 방식도 제각각이다.

미국·칠레·싱가포르와의 FTA에서는 수입국 관세당국이 수입자, 수출자, 생산자를 대상으로 원산지를 증명하는 직접검증이 적용된다.

수출국의 관세당국에 검증을 위탁하는 간접증명은 아세안·인도와의 FTA에 규정돼 있다.

직접검증과 간접증명을 절충한 제한적 간접증명은 EU·EFTA FTA가 대상이다.

한 업계관계자는 "그나마 대기업은 인력이나 조직이 있어 다행인데 중소기업들은 복잡한 원산지규정과 현실적 어려움으로 FTA를 활용할 능력이나 준비가 크게 떨어진다"고 토로했다.

◇늘어나는 검증요구

관세청은 지난 10월 EU로 수출하는 기업들에 '원산지검증주의보'를 발령했다.

한-EU FTA 발효 두 달 만에 포르투갈·루마니아·리투아니아 3개 나라가 국내 9개 수출기업에 원산지검증을 동시다발로 요청했기 때문이다.

검증요청 품목은 원사, 직물, 가전제품 등 주요 FTA 수혜품목이었다.

대표적 EU 회원국인 독일은 자국 수출입 물품에 연간 8천건의 원산지검증을 하고 있고 벨기에 등도 특혜관세 적용 수입물품의 0.5%를 무작위로 뽑아 검증한다.

관세청은 "FTA 교역량이 늘어날수록 우리 수출기업에 대한 상대국의 원산지검증 요청도 증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 FTA 상대국의 원산지 검증요청은 올해 9월말까지 49건이 들어와 1년전(8건)에 비해 6배나 증가했다.

FTA 상대국을 대상으로 관세청이 적발해낸 원산지증명 위반사례는 2008년 971건, 2009년 607건, 2010년 188건, 올해 1~10월 138건으로 줄어드는 추세지만 여전히 많은 편이다.

원산지규정을 위반하면 해당 기업은 해당 세관당국의 고강도 세무조사와 막대한 추징금을 통보받는다.

최장 과거 5년간의 해당 수출액이 특혜관세율 적용대상에서 제외돼 관세를 추징당할 수 있다.

실제 스위스 주름살제거제를 우리나라에 수출하던 업체 한곳이 관세청의 의뢰로 해당국의 세무조사를 받아 최근 3억원을 추징당했다.

포드자동차는 원산지를 입증하지 못해 멕시코로부터 4천100만달러의 벌금을 부과받기도 했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주요 FTA 상대국인 미국과 EU다.

두 곳 모두 전기·전자, 기계, 자동차 등 주요 수출품목이 우리나라와 경쟁 관계에 있고 정부가 한국을 거친 중국산 물품의 우회수입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기업 손잡고 노력해야

복잡한 원산지 규정과 검증절차는 기업의 FTA 활용률을 떨어뜨린다.

우리나라 기업의 FTA 활용률은 아직 50% 수준에 불과하다.

FTA 활용률이 80%인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비교된다.

우리나라의 FTA 활용률이 떨어지는 것은 수입보다 수출에서 두드러진다.

작년 관세청이 수출 상위 50대 품목을 분석해 FTA 활용률을 추정한 결과 2004년 발효된 한-칠레 FTA의 활용률만이 수출 85.5%, 수입 94.3%로 비교적 높았다.

한-아세안 FTA(2007년 발효)는 수출 29%·수입 68.1%, 한-인도(2010년) FTA는 수출 17.7%·수입 45.8%로 수출기업의 FTA 활용률이 두드러지게 낮다.

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FTA의 정책목표가 대기업보다 중견기업·중소기업 육성에 맞춰져야 한다.

이들 기업이 원산지규정 등 FTA에 잘 대응할 수 있도록 정부와 무역협회 등 기관의 협조가 절실한 때다"라고 지적했다.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는 "중소기업들이 원산지규정을 어려워만 할 것이 아니라 과감한 투자를 통해 기회를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관세청 등 정부가 중소기업용 원산지관리시스템(FTA-PASS) 무료 배포, 원산지관리사제도 시행, 교육 강화 등으로 통해 노력하고 있지만 보완도 필요하다.

익명을 요구한 관세청 관계자는 "일선에서 기업을 지원하려 해도 영업비밀 등이 노출되기 때문에 꺼리는 경우가 많다.

기업 입장을 고려해 좀 더 섬세한 지원방안과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유경수 기자 yk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