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재정위기 해법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빅3’ 정상이 24일 경제위기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긴급회동을 가졌지만 새로운 해법을 내놓지 못했다.

유력한 방안으로 거론됐던 유로본드 도입이나 유럽중앙은행(ECB) 역할 확대 등이 모두 독일의 반대로 무산될 가능성이 커졌다.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을 1조유로 규모로 확충하는 것도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평이다. 실망감이 커지면서 유로존 국채 금리는 다시 급등했다.

◆ 유로본드 ‘없었던 일’로

스트라스부르 정상회의에서 3개국 정상은 유로존 공동 채권 발행 계획인 ‘유로본드 구상’에 대해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재정위기를 해결할 확실한 해법으로 거론됐지만 독일은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독일은 남유럽 국가들의 빚을 떠안을 뿐 아니라 국채 금리 상승으로 자금조달 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어 유로본드 도입에 줄곧 반대해왔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유로존 국채 금리를 일괄적으로 통일하는 것은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며 “유로본드 도입은 근본적인 치유는 하지 않고 위기 이전 상황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못박았다. 독일 경제일간 한델스블라트는 “메르켈 총리가 유로본드안을 협상 테이블에서 완전히 삭제해 버렸다”고 평가했다.

◆다시 팔다리 묶인 ECB

‘유로존 빅3’ 정상들은 “ECB의 독립성을 지지한다”는 데 합의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3국 정상은 금융정책과 통화 안정을 관장하는 ECB의 독립성을 존중하고 어떤 요구도 하지 않는다는 데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합의는 “ECB가 유로존 국채를 적극적으로 매입해 금융시장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PIIGS(포르투갈 아일랜드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국가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대신 ECB가 경제성장이나 금융시장 안정과 같은 주변의 요구에 흔들리지 말고 ‘인플레이션 억제’라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는 독일의 의지만 관철됐다. 독일 주간 슈피겔은 “메르켈이 강경자세를 고수해 (ECB 역할 확대를 바랐던) 사르코지를 주저앉혔다”고 전했다.

◆유럽기금 확충안도 위기

유로본드와 ECB 역할 확대라는 카드가 모두 무용지물이 된 가운데 기존 유로존의 핵심 대책이었던 유럽기금 확충안마저 좌초 위기에 처했다. 유로존 3위 경제국인 이탈리아 국채 금리가 연 7% 수준으로 치솟으면서 유럽기금 확충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당초 유럽기금은 가용자금이 2500억유로에 불과하지만 자체 국채 발행과 유로존 국가들이 발행하는 국채를 보증하는 방법으로 1조유로를 운용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이탈리아 국채 금리 상승으로 유럽기금 국채 발행금리가 치솟아 기금 확대 효과도 줄어들게 됐다. 클라우스 레글링 유럽기금 최고경영자(CEO)는 “기껏해야 7500억유로 규모 효과를 볼 수 있을 듯하다”고 전망했다.

◆ 유로존 국채금리 급등

유럽 각국이 제시했던 해법이 독일의 반대로 원점으로 돌아오자 시장 불안은 증폭됐다. 25일 이탈리아 10년물 국채 금리는 연 7.3%로 또다시 ‘위험수위’인 7%를 넘어섰다. 2년물과 5년물 국채금리는 7.7%와 7.8%로 유로화 도입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날 실시된 이탈리아 6개월물 단기 국채입찰에서 낙찰 금리도 6.5%로 최고치였다. 스페인 프랑스 포르투갈 국채 금리도 모두 상승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위기 탈출구를 찾지 못하면서 독일마저 투자안전지대 지위를 잃을 위험에 처했다”고 전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