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유로존 위기 극복을 위해 '실탄'을 대야 한다는 각국 정부의 요구에 대해 ECB 내부에서 강한 반대의 목소리가 나왔다.

8일(현지시간)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ECB 수석 집행위원인 옌스 바이트만 독일중앙은행(분데스방크) 총재는 ECB가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확충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명백한 관련 조약 위반이라고 밝혔다.

바이트만 총재는 유럽연합(EU) 조약 123조가 중앙은행 발권력을 동원해 정부 부채를 갚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러한 발언은 ECB가 이탈리아·스페인 국채 시장을 떠받치는 것은 사실상 이들 국가에 대한 재정 지원으로서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나타낸 것이다.

독일은 돈을 찍어내서 공공부채를 충당했다가 초(超)인플레이션과 사회 혼란을 겪은 옛 바이마르 공화국(1913~1933)의 경험에서 쓰라린 교훈을 배웠다고 바이트만 총재는 덧붙였다.

그러나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전날 영국 하원에서 "유로 위기 해결을 위해 국제통화기금(IMF)보다는 EU와 ECB가 (먼저) 노력해야만 한다"고 밝혔다.

미국·중국·일본 등도 "유럽 ECB가 스스로 나서지 않는데 우리가 왜 도와야 하느냐"며 ECB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고 있다.

독일이 여전히 ECB의 독립성 유지를 강조하며 EFSF 지원에 반대하고 있으며, 바이트만 총재도 이번 발언으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함으로써 'ECB 적극 역할론'이 현실화되려면 상당한 진통을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ECB가 그간 그리스 등 위기 국가들의 국채를 매입했다 입은 손실도 이미 문제가 되고 있다.

ECB는 그리스 국채 450억유로(약 69조3천억원)를 보유하고 그리스 은행들에 지금까지 1천500억유로(약 231조원)의 자금을 지원한 것으로 추산되나 이 중 상당 부분은 손실 처리가 불가피하다.

이와 관련해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와 영국 중앙은행(BoE)의 경우 국채 구입에 따른 어떤 손실도 정부가 보전해준다는 명시적인 보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사정이 전혀 달라 ECB를 떠받치는 EU 정부 조직이나, 유로화 통화동맹을 뒷받침할 재정동맹 시스템이 없다고 텔레그래프는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는 "ECB가 부실채권을 많이 사서 돈을 잃으면 자본확충을 요청해야 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 현재의 위기가 단순한 유동성 부족 문제가 아닌만큼 결국 유럽이 유로존과 관련된 근본적인 법 체계 전체를 고쳐야만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연합뉴스) 박진형 기자 jh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