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과 광고의 절묘한 결합을 통해 단숨에 인터넷 절대강자로 떠오른 구글.아이폰 하나로 휴대폰 시장의 맹주들을 한방에 보내버린 애플.중동 지역의 정치 판도까지 뒤바꿔 놓은 페이스북과 트위터.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요즘 뜨고 있는 플랫폼 기반 사업이라는 점이다. 그래서일까. 플랫폼 기업이라고 하면 당연히 정보기술(IT) 회사를 떠올리게 된다.

플랫폼이란 '고객이나 공급업체와 같은 참여자들이 거래를 할 수 있는 마당(場)을 만들어 주고,이를 통해 수익을 얻는 비즈니스 모델'을 의미한다. 반드시 IT에 기반한 첨단 기업들만 플랫폼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의류 생산업체인 리앤펑(Li & Fung)이 좋은 예다.

1906년 광저우에서 설립된 홍콩의 대표 기업 리앤펑의 주요 생산 및 판매 품목은 의류,장난감,액세서리 등이다. 2010년 매출은 약 18조원에 이른다. 세계 시장에서 이 정도 매출을 올리는 기업은 부지기수일터.하지만 비즈니스위크는 이 회사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회사 29개' 중 하나로 선정했다. 포브스도 '아시아에서 가장 놀랄 만한 50개 기업' 중 하나로 꼽았다. 이유가 뭘까.

리앤펑은 매년 20억벌 이상의 의류를 생산하면서도 단 하나의 공장도 갖고 있지 않다. 단 한 명의 재봉사도 고용하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40여개국에 있는 8300개 공급업자 및 그곳에 근무하는 200만명 이상의 사람들을 실질적으로 움직인다.

미국 MIT 경영대학원의 쿠수마노와 그의 제자인 가우어는 '플랫폼 리더십'이란 책에서 성공적인 플랫폼 주도 기업들이 플랫폼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었던 몇 가지 요소를 밝혀냈다. 이를 바탕으로 리앤펑의 플랫폼 구축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플랫폼 네트워크를 성공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업계의 관행을 변화시킬 수 있는 차별화된 기술이 있어야 한다. 리앤펑은 거대한 네트워크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공급자관리(SRM · Supplier Relationship Management) 시스템을 개발했다. 예컨대 미국의 의류회사가 남성용 반바지 30만벌을 주문한다고 치자.리앤펑은 옷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공장,직물기계,염료,천,재봉사 등을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지만 공급업체들을 조합해 한 달 뒤엔 완제품을 미국으로 선적할 수 있다. 단추는 중국,지퍼는 일본,실은 파키스탄에서 조달해 방글라데시에서 꿰매는 식이다.

두 번째 필요한 것은 플랫폼 주도 기업의 사업영역을 명확히 밝히는 것.이는 공급업체들에 그들의 사업을 침범하지 않겠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효과가 있다. 리앤펑은 자신의 역할을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다고 보았다. 지휘자도 악기를 다룰 수 있지만 어떤 악기도 연주하지 않는다. 리앤펑도 맘만 먹으면 직접 제품 생산에 뛰어들 수 있지만 자신의 역할을 공급업체를 조율,전체 네트워크가 성공하게 만드는 것으로 한정지었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공급자들이 참여하고 협력하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공급업체들을 소유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이 플랫폼 네트워크에서 이탈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적절한 수준의 일감을 보장해줘야 한다. 이를 '느슨한 네트워크'라고 한다. 리앤펑은 이를 위해 '30%보다 많게,그러나 70%보다는 많지 않게'란 '30/70' 규칙을 만들었다. 최대한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공급업체 생산능력의 30% 이상을 활용하되 유연성 보장과 학습을 격려하기 위해 70% 이상은 요구하지 않는다.

물질의 세 가지 상태인 기체,액체,고체로 비유하자면 느슨한 네트워크의 목표는 액체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70% 이상을 요구하는 고체 상태는 세상의 변화와 고객의 바뀌는 수요를 따라갈 수 있는 유연성이 없다. 반면에 30%에 미치지 못하는 기체 상태는 충분한 생산성을 갖추기에는 응집력이 부족하다. 리앤펑은 30/70 규칙을 활용해 공급업체에 대한 통제력을 잃지 않으면서도 플랫폼 네트워크의 규모를 빠르게 키워나갈 수 있었다.

리앤펑의 사례는 국내 기업들에도 시사점을 준다. 플랫폼에 기반한 대규모 시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갑'과 '을'이라는 관계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일부 희생이 따르더라도 네트워크 참여 기업들의 이익을 보장해줘야 한다. 이들을 지원함으로써 상생을 기반으로 산업 전반을 보다 건강하게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