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준 대상 채무·자료요구 금융기관 범위에 이견

한국은행법 시행령 개정을 앞두고 한은과 금융당국이 대립각을 세울 것으로 예상된다.

한은법 개정안이 논란 끝에 지난달 31일 국회를 통과했으나 쟁점인 지급준비금 적립대상 채무의 종류와 한은이 자료제출을 요구할 수 있는 금융기관의 범위는 시행령에 위임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5일 "개정된 한은법이 시행되는 12월까지 시행령도 개정해야 하기 때문에 이르면 다음 달 말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관련 절차를 밟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재정부는 조만간 입법예고안을 마련하고자 한은과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관련 기관과 금융업계의 의견을 받을 예정이다.

최대 쟁점인 지급준비금 부과 대상 채무와 관련해 한은은 은행채를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는 입장이나 은행권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어 재정부가 어떤 중재안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지난달 30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2개 회원국 가운데 금융채에 지급준비금을 부과하지 않는 나라는 6개국에 불과하다"며 "한때 이를 폐지했던 영국도 수년 전 되살려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은은 은행채에 지준을 부과하면 은행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운용의 묘를 최대한 살리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은행연합회는 "지급준비금 제도는 급작스런 인출에 대비해 일정 비율(2~7%)을 중앙은행에 적립하는 제도"라며 "은행채는 상환 기일이 확정돼 있어 사전에 상환에 대비할 수 있으므로 지급준비금 적립 대상으로 부적합하다"며 반박했다.

연합회는 특히 한은 총재가 언급한 영국 사례에 대해 "금융기관들이 자율적으로 지준 적립 여부와 규모를 설정하고 영란은행은 이를 달성할 때 정책금리 수준의 이자를 지급하는 제도"라며 "한은에 지급준비금을 무이자로 강제 적립하도록 의무화한 한국의 제도와 다르다"고 주장했다.

금융위도 지급금액과 지급일자가 확정된 채무에 지준을 부과하는 것은 불확정적인 예금인출 요구에 대비하기 위한 지준 제도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재정부 관계자는 "은행채에 지준을 부과하지 않는 국가도 많고 제도를 도입한 국가 중에서도 지준율 0%를 적용해 실질적으로 부과하지 않는 사례도 있다"며 "위기 때 중앙은행의 대응 능력을 키우자는 한은법 개정 취지 등을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시행령은 지준 대상 채무에 은행채를 포함하되 지준율을 결정하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평소에는 지준을 부과하지 않다가 은행채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는 경우 부과할 가능성이 있다.

이번에 통과한 한은법은 한은이 통화신용정책을 위해 자료제출을 요구할 수 있는 금융기관의 범위를 금윤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에서 정한 금융기관 가운데 자산 규모 등을 고려해 시행령에서 정하도록 했다.

이를 두고 될 수 있으면 많은 기관이 포함되도록 자산 규모를 정해야 한다는 한은과 대상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감독당국이 맞서고 있다.

재정부는 소규모 금융기관의 부담 등을 고려해 한은과 감독당국, 금융업계의 의견을 반영해 시행령에서 정할 방침이다.

이밖에 한은법은 한은이 금감원에 공동검사를 요구할 때 금감원이 응해야 하는 시한을 시행령에서 정하도록 했지만 이미 관련 기관이 1개월로 합의해 그대로 반영될 예정이다.

(서울연합뉴스) 김준억 기자 justdust@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