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에 사는 조순천 씨(48 · 주부)는 고교 2학년과 중학교 1학년인 두 자녀를 두고 있다. 공기업에 다니는 남편의 월급이 적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노후를 위해 투자할 여유는 없다. 월급의 절반 이상을 자녀 교육비에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씨는 "둘째가 대학교에 들어갈 때쯤엔 남편이 퇴직할 것 같다"면서 "은퇴 이후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고 말했다.

유난히 뜨거운 교육열이 눈앞에 다가온 '100세 시대'를 준비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자녀 교육비탓에 노후준비를 뒷전으로 미루고 있어서다. 젊은 부부들은 교육비 부담에 출산도 꺼리고 있다.

저출산 문제는 급속히 진행되는 고령화와 맞물려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교육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정부 차원의 정책적 대응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교육비 부담이 노후준비 걸림돌

보험사회연구원 조사(2009년)에 따르면 자녀 한 명당 지출되는 총 양육비는 2억6204만원으로 추정된다. 출생 후 대학졸업 때까지 22년 동안 들어가는 돈을 합친 것이다. 시기별로는 취학 전 영유아 때 6년간 5404만원,초 · 중 · 고등학생 12년간 1억3989만원,대학생 4년간 6811만원이다. 이 돈을 부담하다보면 자신들의 노후를 준비할 여유가 없다는 의견이 많다.

교육비는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대학등록금만 해도 그렇다. 최근 5년간 물가상승률보다 2배 이상 올랐다. 목돈이 들어가는 4년제 대학의 연간 등록금은 작년 평균 684만원(사립대는 754만원)에 달했다. 최근엔 결혼과 출산이 늦어져 퇴직 후 자녀를 대학에 보내야 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소득이 줄어도 그대로 내야 하는 '고정비'성격의 대학등록금은 퇴직 전후의 50~60대에게 큰 부담이 되고 있다.

한국의 고등교육 과정에서 사교육비 비중은 76.9%에 이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이 비중이 5% 미만인 북유럽의 노르웨이와 덴마크는 말할 것도 없고 미국(66%)이나 일본(67.8%)을 앞선다.

통계청이 30세 이상 가구주를 대상으로 조사(2008년)한 결과에 따르면 79.8%가 '교육비 지출이 부담스럽다'고 응답했다. 한국경제신문과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가 공동 실시한 설문조사에선 특히 40대와 50대가 '자녀교육비 때문에 노후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저출산의 최대 원인

과중한 자녀양육 및 교육비는 저출산과 노후준비 부족이라는 또다른 사회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아이 수)은 1.22명이다. 세계 최저 수준이다. 보건복지부가 2009년 1자녀 이하 기혼여성(20~39세)을 대상으로 출산 중단의 이유를 조사한 결과 '자녀교육비 부담 때문'이란 응답이 26.7%로 가장 많았다.

노후준비도 문제다. 전문가들은 물가상승률과 금리 등을 감안했을 때 소득의 30% 이상을 무조건 노후자금 마련을 위해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당장 자녀 교육비 지출에 매달리다 보면 노후자금 마련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현대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사교육비 부담증가에 따라 지출을 줄인 지출항목은 '노후대비를 위한 재테크나 저축'이 57.2%로 가장 많았다. 이어 레저 · 문화생활(25.4%) 건강관리(13.9%) 주거비(2.6%) 식품 · 의료비등 기타(0.9%) 순이었다. 누구나 필요성을 공감하면서도 당장은 눈앞에 닥치지 않은 노후대비가 '희생양'이 되기 쉽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다.

◆정부 차원 '인센티브' 필요

과거에는 부모가 '땅팔고 소팔아' 자녀교육을 시키면 자녀가 커서 돈을 벌어 부모의 노후를 책임졌다. 최근엔 아니다. 지난해 통계청 사회조사에 따르면 '자녀가 부모의 생계를 돌봐야 한다'는 의견은 30.6%로 2001년 70.7%에서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결국 스스로가 자녀의 교육비 마련과 노후준비를 병행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후대비를 위한 자금은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해 서울대 노화고령화사회연구소가 베이비붐 세대 467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은퇴 후 월평균 생활비로는 211만원 정도가 필요하지만,노후대비를 위한 월평균 저축은 17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준비없이 노후를 맞이해 발생하는 '은퇴 빈곤층' 문제는 국가적 과제이기도 한 만큼 개인들이 스스로 자녀교육비와 노후자금을 마련할 수 있도록 정부가 장기투자상품 등에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영규 성균관대 경영학과 교수는 "연금저축의 경우 대부분 사람들이 소득공제 혜택을 받기 위해 우선적으로 가입한다"며 "장기투자를 유도하려면 세제혜택을 주는 금융상품을 도입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