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젠드라 시소디어 교수(미국 벤틀리대)가 최근 다섯 번째 한국을 방문했다. 그의 책 '위대한 기업을 넘어 사랑받는 기업으로(Firms of Endearment)'가 한국에서 번역 · 출간된 직후인 2008년 제주도에서 열린 '글로벌 이노베이션 포럼'에 기조연설자로 초청받은 것이 첫 방한이었다. 지난해에는 '상생' '동반성장'의 화두로 그의 책이 주목받으면서 국가브랜드위원회 초청으로 한국을 찾았다. 이번에는 좀 더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 포스코가 '사랑받는 기업 선포식'을 가지며 특별 연사로 그를 부른 것이다.

시소디어 교수는 이번 방한 기간 중 정준양 포스코 회장과 오찬간담회를 갖고,포스코의 '사랑받는 기업 추진 사무국'이 마련한 실무자 워크숍에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지도하기도 했다. 체류 기간 중 짬을 내 포항까지 내려가 제철소를 둘러봤다. 그는 "한국 기업들이 갖고 있는 '사랑받는 기업 DNA'를 글로벌 시장에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며 그 역할을 자신이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위대한 기업을 넘어 사랑받는 기업'의 역자로 그의 이론을 한국에서 전파하고 있는 권영설 한경아카데미 원장이 시소디어 교수를 만났다.


▼포스코라는 회사를 예전부터 알고 있었는가.

"자세히는 아니지만 회사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다. 선포식에 초청받고 사전 조사를 하면서 자세히 알게 됐다. 물론 내 전공(원래 마케팅) 분야와는 거리가 있는 업종이어서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조사하면 할수록 '내가 왜 이런 세계적인 회사를 지금까지 몰랐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워런 버핏이 한국 기업 중에서 가장 많은 주식을 보유하고 있고,뉴욕 런던 도쿄에 동시 상장돼 있는 보기 드문 한국 기업을 경영학 교수인 내가 몰랐다니 부끄럽기까지 했다. 특히 포항제철소를 방문하면서 정말 대단한 회사라는 것을 직접 보고 느꼈다. "

▼포항제철소에서 무엇을 보았기에.

"40여년 전 한 어촌 마을이 한 나라를 대표하는 산업도시로 변모한 그 역사의 현장을 보았다. 기업에서 목적(purpose)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가난한 나라를 공업국가로 만드는 기반이 될 '산업의 쌀'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보겠다는 비전이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공장 시설도 대단했지만 내가 본 것은 좀 다르다. 수백만 그루의 나무가 사업장 내에 심어져 있고,원재료를 야적해 놓았는데 먼지도 날리지 않는 것을 보고 포스코가 이해당사자뿐만 아니라 환경까지 세심하게 챙기는 '깨어 있는' 회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역사관에서는 '안 되면 포항 앞바다에 빠져 죽자'는 '우향우(右向右) 정신'과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친필로 써줬다는 '종이마패'(정치권의 인사 청탁이나 부당한 이권 요구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약속한 메모)를 봤는데 아주 인상적이었다. "

▼포스코 서울 본사에서 열린 '사랑받는 기업 선포식'은 어땠는가. 언뜻 보니 표정이 상기돼 있던데.

"정말 감동이었다. 내가 낸 책이 이역만리 타국에까지 영향을 미쳐 한 대기업 전체가 이 운동을 벌이겠다고 선언을 하니 어떤 기분일지 생각해보라.다문화가정 어린이 20여명이 합창을 하는 장면이나 정준양 포스코 회장을 비롯한 포스코 패밀리 리더들이 다함께 나가서 '사랑받는 기업 선언문'을 들고 선서를 할 때는 가슴이 뭉클해지기까지 했다. "

▼사랑받는 기업은 이해당사자들과 정서적(emotional) 유대관계를 강하게 맺는 것이 특징인데,이번 선포식은 그런 면에서 한국 사회에 진정한 의미의 동반성장 시대가 열리는 선언인 것 같은 느낌을 나도 강하게 받았다. 선포식 전에 정준양 포스코 회장과 가진 오찬간담회에서는 무슨 얘기를 나눴는가.

"포스코가 사랑받는 기업이 되기 위해 기울이고 있는 노력에 경의를 표하고,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포스코가 인도에 진출하며 겪은 어려움에 대해서도 솔직한 얘기를 나눴다(시소디어 교수는 인도 출신이다).정 회장에게 이해당사자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생태계 경쟁력을 강조한 포스코의 사랑받는 기업 추진 방향이 정곡을 찔렀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앞으로 할 일이 더 많다'며 겸손하게 답했지만,나는 특히 65개가 되는 파트너 지원 프로그램은 그야말로 글로벌 최고 수준인 만큼 자신감을 가져도 좋다고 강조했다. 인사치레로 얘기한 게 절대 아니다. '협력 중견기업 30개 육성 전략'을 비롯한 포스코의 파트너 지원 정책은 정말로 촘촘하고 세심한 것이어서 기회가 된다면 하버드비즈니스리뷰 등 논문과 새로운 저작을 통해 세계에 알리고 싶을 정도다. 그 점이 이번 방한의 최대 성과이기도 하다. "

▼포스코에 지적해줄 것은 없는가. 한국 기업 전반에 관한 것도 좋다.

"포스코를 포함해 한국의 대기업들은 이미 세계적 수준이다. 다만 SPICE(사회,파트너,투자자,고객,종업원을 뜻하는 영문 머리글자를 한 단어로 만든 것.'양념'이라는 뜻으로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를 부르는 시소디어 교수의 모델명이다) 모델로 보면 종업원들의 도전정신을 고취시키는 데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이 점은 한국 기업 전반에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유교적 문화의 특징이기도 하고,빠른 시간 안에 성과를 극대화하는 '톱-다운(top-down)'식 모델인데 21세기에 필요한 유연하면서도 자율적인 종업원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도전하는 기업가 정신을 더 불어넣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 소비재 기업이 아니라 쉽지 않겠지만 국제적으로 명성에 걸맞은 마케팅을 할 필요가 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세계인들이 벤치마킹 사례로 삼는 한국 대표기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이번 방한에 앞서 '사랑받는 기업 연구소 한국지사'(대표 박재림)를 세웠는데,앞으로 어떤 활동을 벌일 것인가.

"한국은 지난해부터 정부가 대 · 중소기업 상생,동반성장 등의 화두를 내세우면서 산업계 전반에서 '깨어있는 자본주의(Conscious Capitalism)' '사랑받는 기업 문화' 등으로 조직문화의 중심축이 옮겨가고 있다. 다만 그 속도에 편차가 심해 정부와 기업 간 갈등도 있고 오히려 왜곡되는 느낌도 든다. 자본주의는 진화하고 있고,결국 사회 전체에 도움이 되는 목적을 갖고 그에 충실한 기업이 지속 성장하는 시대인 만큼 동반성장이라는 화두는 분명 시대적 아젠다다. 사랑받는 기업 연구소를 통해 상생협력의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고 동반성장 방안 컨설팅도 제공할 계획이다. 포스코 같은 좋은 사례를 계속해서 발굴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

▼한국에만 벌써 다섯 번째인데 외국엔 어느 정도 다니나.

"이미 올해 하반기 6개월의 스케줄이 꽉 차 있다. 미국뿐만 아니라 해외 각지에서 강연하고 콘퍼런스에 참여한다. 당장 다음주부터 인도,유럽 출장이 잡혀 있다. 올해는 새 책 '깨어있는 자본주의'를 존 맥케이 홀푸드 창업자와 같이 쓰기로 돼 있다. 일곱 번 정도 사나흘씩 같이 만날 스케줄을 잡아놨다. 그래서 더 바빠졌다. "

▼그렇게 바쁘면 가족들에게 '사랑 받기' 어려울 것 같은데.

"그게 가장 큰 고민이다. 그러나 가족과의 일을 가장 우선 순위에 두기 때문에 사랑은 받는 편이다(웃음).아무리 바빠도 여름휴가는 꼭 가족과 함께 좋은 곳에서 1주일을 보내고,부모님이 계시는 인도에도 세미나 등과 연결시켜 1년에 네 번은 찾아간다. "

▼모든 이해관계자가 원하는 것을 잘 정렬해야 한다는 'SPICE 모델'을 일상 생활 속에서도 잘 실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말은 고맙지만 가족들에게 항상 미안하다. 그러나 세상을 움직이는 중요한 축인 기업들이 목적 중심의 조직이 되도록,그래서 직원들을 포함해 그들과 관계를 맺는 이해당사자들이 모두 행복해질 수 있도록 돕는다면 그만큼 보람있는 일도 드물 것이다. 이번 방한은 그럼 점에서 내가 생각한 방향이 옳았다는 것을 확인한 좋은 계기였다. 사랑받는 기업이 많다는 사실을 눈으로 보고,그들이 이뤄놓은 베스트 프랙티스(best practice)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언제나 행복한 일이다. 한국의 많은 기업들이 위대한 기업에서 사랑받는 기업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

정리=박예진 한경가치혁신연구소 연구원 ye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