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워치] 그리스 해법 놓고 獨·佛 '충돌'…이민 규제에 종교 갈등까지
최근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긴축 반대 시위에 독일의 옛 나치당 표지(卍)가 등장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울상을 짓는 사진도 있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이 그리스에 너무 빡빡하게 구는 것 아니냐는 반발의 표시였다.

반면 독일은 꿈쩍도 않는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을 수 없다"며 강력한 긴축안을 요구한다.

그리스 재정위기는 유럽이 분열의 시대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키우는 대표적인 사례다. 2차대전 이후 1967년 유럽공동체(EC)가 생기고 1999년 유로화가 탄생하면서 전쟁으로 얼룩진 유럽의 분열사는 끝을 보는 듯했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재정위기로 경제가 어려워진 국가들이 제 살길 찾기에 나서면서 이민과 종교 이슈가 불거지고 이는 유럽 내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그리스 두고 유럽 쌍두마차 갈등

그리스의 디폴트(채무불이행)를 막는 방법을 둘러싸고 유럽 경제의 '쌍두마차'인 독일과 프랑스는 갈등을 빚었다. 독일은 그리스 국채를 장기 국채로 교환해주는 스와프 방식의 채무재조정에 민간투자자들을 강제적으로 참여시켜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핀란드 네덜란드 등 북유럽 국가가 이 방안에 동의했다. 현재 메르켈 총리는 강경입장에서 프랑스식 해결방안으로 한 발 다가갔지만 아직 갈길이 멀다.

프랑스는 민간이 만기가 도래하는 그리스 국채를 자발적으로 연장(롤오버)해주는 방식을 지지한다. 프랑스 3대 은행인 BNP파리바 크레디아그리콜 소시에테제네랄이 그리스 국채를 대거 보유하고 있어 리스크를 최대한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차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로 내정된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중앙은행 총재는 프랑스 편에 섰다.

◆이민 · 종교의 관용도 점차 사라져

이민과 종교 등에 대한 관용이 사라지는 것도 유럽에 나타나고 있는 분열의 징후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유럽 25개국의 자유로운 국경 이동을 보장하는 솅겐 조약의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튀니지 등 북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몰려온 난민들이 비자를 발급받은 탓에 프랑스와 이탈리아로 대거 흘러들고 있기 때문이다. 실업률이 높은 이들 국가에서 난민 증가는 취업난을 가중시킨다.

핀란드에선 지난 4월 총선에서 '반(反)이민' 성향 극우정당인 '진짜 핀란드인'이 약진했다.

유럽인들과 무슬림과의 관계도 악화되고 있다. 지난 4월 프랑스가 이슬람 전통 의상인 부르카를 공공장소에서 착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을 시행하자 무슬림들은 종교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최근 벨기에도 부르카 착용을 금지했고 네덜란드 이탈리아도 비슷한 법안을 준비 중이다.

네덜란드에선 도축 문제로 떠들썩하다. 유대교 율법인 '코셔'와 이슬람 율법인 '할랄'에선 죽거나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도살된 고기를 먹을 수 없다. 도축 전 동물을 마취 또는 기절시키도록 한 네덜란드 법은 코셔와 할랄을 따르는 사람들은 살아 있는 동물을 도축할 수 있도록 예외규정을 둬왔다. 최근 네덜란드 의회가 이 예외 규정 폐지를 추진하면서 유대인과 무슬림의 시위가 빈발하고 있다.

벨기에에서는 네덜란드어(북부 플레미시 지역)와 프랑스어(남부 왈롱 지역)를 쓰는 지역 간 갈등으로 무정부 상태가 1년째 지속되고 있다.

◆유럽 분열 막을 '공동의 적' 없어

10세기 프랑크 왕국이 분열된 이후 전쟁 속에서 지내온 유럽이 통합의 길을 걷게 된 뒤에는 외부의 적이 있었다. 2차대전 이후 유럽 국가들은 독일의 재무장을 막아야 했고 경제 재건이 시급했다. 옛 소련의 핵폭탄은 공포로 다가왔다. 미국이 유럽을 '핵우산'으로 보호해줬지만 미국의 경제력에 대항할 힘도 길러야 했다.

그러나 외부의 적이 사라지면서 통합의 필요성도 줄어들었다. 옛 소련은 사라졌고 전쟁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유로화로 공동 시장이 열리고 경제력은 커졌지만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유럽 각국의 경제 여건이 다른데도 금리정책은 일률적으로 적용되면서 부작용이 나타나는 게 대표적이다.

그리스 아일랜드 스페인에선 금리가 갑자기 낮아지자 부동산 버블이 생겼다.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버블이 꺼지면서 이들 국가는 어려움에 처하게 됐다. 경제 위기를 겪더라도 통화가치를 절하해 수출을 늘리는 식의 전략은 꿈도 꿀 수 없게 됐다.

강유현 기자 y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