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자동차 회사들이 순수 전기차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작업에 속속 돌입하고 있다. 고유가로 인해 해외 전기차 시장이 주목받으면서 국내 업체들도 전기차 등 친환경차 개발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한국GM은 미국에서 판매 중인 전기차 '볼트'를 지난달 국내에 처음으로 선보이며 시장 진출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이 회사는 최근 인천 청라 주행시험장에서 볼트와 크루즈 전기차의 언론 시승회도 열었다.

◆가장 현실적인 전기차 '볼트'


볼트는 전기모터와 엔진을 모두 장착했지만 일반 하이브리드카와 다른 전기차로 볼 수 있는 차량이다. 하이브리드카는 전기모터와 내연기관(가솔린엔진 등)이 번갈아 가며 차량에 동력을 전달해 주는 반면 볼트는 최대 80㎞ 거리까지는 전기모터의 힘으로만 달린다. 이후 배터리가 다 떨어지면 엔진이 전기모터를 돌리는 방식이다.

하이브리드카는 엔진이 직접 차량을 달리게 하지만 볼트는 엔진이 전기모터를 돌리는 것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볼트는 배터리를 쓸 때나 엔진을 쓸 때나 결과적으로 전기모터가 차량을 구동시키는 셈이다. 볼트는 배터리를 완충하고 기름까지 가득 채우면 총 610㎞를 달릴 수 있다. 가장 현실적인 전기차란 평가를 받는 이유다.

◆조용하면서도 가속 뛰어나


기자는 최근 열린 시승회에서 빨간색 볼트를 타봤다. 겉모습은 라디에이터그릴과 엔진 후드(덮개)가 매끈하게 연결되는 디자인이 인상적이었다. 전기차가 아니라 일반 차량으로 개발해도 좋을 듯한 디자인이었다.

차에 올라 타니 계기판에 배터리로 갈 수 있는 거리가 '7㎞' 남았다는 표시가 있었다. 변속기에 P(주차),R(후진),N(중립),D(주행) 모드가 적혀 있지 않고 계기판으로 확인해야 하는 게 독특했다. 크게 불편하진 않았지만 처음엔 어색한 느낌도 들었다. 가운데 있는 스크린을 통해서는 충전 상황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볼트는 전기차라 엔진 소리가 나지 않기 때문에 매우 조용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가속력도 뛰어난 편이었다. 제로백(출발 후 시속 100㎞까지 걸리는 시간)이 9초 정도다. 최고 시속은 161㎞다. 액셀러레이터를 힘차게 밟으니 곧바로 145㎞ 정도까지 나왔다. 고속도로 주행도 전혀 불편하지 않을 가속력이었다. 볼트의 배터리 충전은 가정용 콘센트로 4시간 정도면 완충할 수 있다.

◆업체들,속속 전기차 시장 뛰어들어


한국GM이 국내 전기차 시장 진출을 저울질하는 상황에서 현대 · 기아자동차 등을 비롯한 국내 업체들도 전기차 등 친환경 차량 개발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그동안 국내 업체들은 정부의 친환경차 지원 방안 등이 확정되지 않아 시장 진출에 다소 머뭇거리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해외 업체들이 전기차 등 친환경차 개발을 끝내고 양산에 들어가는 등 관련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작업에 돌입하자 국내 업체들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또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으로 떠오른 중국 정부가 앞으로 10년 동안 친환경차 개발과 보급에 17조원을 쏟아부을 예정이어서 국내 업체들은 이 시장에 뛰어들기 위해서라도 친환경차 개발에 속도를 내야 하는 상황이다.
현대차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란 가정에서 배터리를 충전해 전기차처럼 사용하다 배터리가 다 소모되면 엔진으로 구동되는 차량을 일컫는다. 현대차는 '블루윌'이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을 2013년부터 양산할 계획이다. 이 회사는 또 전기차인 '블루온'과 투싼ix 수소연료전지차도 개발했다. 내년에 투싼ix 수소연료전지차 1000대를 생산하고 2018년까지 3만대를 만들어낼 계획이다.

르노삼성자동차의 모회사인 르노는 2인승 '트위지',경차인 '조이',세단인 '플루언스',다목적 차량인 '캉구' 등 네 종류의 친환경차를 개발하고 있다. 르노삼성이 주력 전기차로 여기는 것은 SM3에 기반한 SM3 Z.E 모델이다. 국내 최초로 자동차 배터리를 휴대폰 배터리로 교환하듯이 빼고 끼울 수 있는 방식으로 고안됐다. SM3 Z.E는 부산공장에서 생산될 예정이다.

◆전기차는 가격과 인프라가 관건


전기차 시장은 가격이 가장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볼트의 경우 미국에서 판매가는 4만1000달러다. 우리 돈으로 4400만원 정도인 셈이다. 미국에선 보조금을 7500달러 정도 준다. 따라서 미국 소비자들은 3만3500달러에 구매할 수 있다.

국내에선 아직 민간 부문의 전기차 보조금은 확정되지 않았다. 정부는 공공기관이 전기차를 구입할 경우 저속전기차(시속 60㎞ 미만)는 대당 578만원,고속전기차는 경형(4인승 이하) 1720만원,중형은 194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전기차의 충전 인프라가 아직 국내에는 거의 없는 것도 시장 활성화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