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법지원인에 대해 학계와 어떤 발표회나 공청회도 갖지 않았고 제대로 의견 수렴이 되지 않았어요. 할 말을 다하면 '국회 모독죄'가 될 것 같네요. "

정찬형 한국금융법학회 회장(63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사진)은 내년 4월부터 시행되는 준법지원인 제도에 대해 이같이 쓴소리를 했다. 준법지원인 제도를 담은 상법 개정안은 2009년 의원입법으로 제출됐으며 지난 3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공포됐다. 정 회장은 "준법지원인 제도는 수정돼야 할 사항이 많다"고 못박아 말했다. 우선 준법지원인 자격을 문제 삼았다. 그는 "법학 교수는 5년 이상 실무 경험을 요구하고 있는 반면 변호사는 사법연수원을 갓 나와도 지원인이 될 수 있게 돼 있다"며 "변호사에 대해서만 실무 경험을 전혀 요구하지 않는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결격 사유가 있는 변호사의 임명에 대한 아무런 제한이 없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목했다. 정 회장은 "관련 기업과 어떤 소송 업무를 수행했다거나 이해관계가 있는 변호사,금융 관련 법령을 위반한 전력이 있는 변호사는 제척돼야 하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전혀 규정이 없다"며 "회사의 영업과 경쟁이 되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하는 경업피지(競業避止) 의무도 규정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준법지원인의 임기도 논란거리다. 그는 "개정 상법에서는 임기를 3년으로 하고 다른 법률에서 그보다 짧게 정해도 상법을 따르도록 하고 있다"며 "특별법이 일반법에 우선해야 하는데 반대로 일반법인 상법의 조항이 특별법보다 우선하는 기이한 입법"이라고 지적했다. 도입을 안 했을 경우에 대한 처벌조항이 없어 "의무가 아닌 선택"이라는 법무부 측 주장에 대해서도 "법령을 위반했을 경우 부정행위 발생 시 등에 대한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이 생길 수 있다"고 반박했다. 정 회장은 "미국에서도 상장회사가 준법지원인을 두는 경우 혜택을 주는 등 이 제도가 국내에만 도입된 것은 아니긴 하다"며 "다만 준법지원인의 이익만을 위한 규정이 되지 않도록 손질을 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정 회장은 2003년 금융법학회를 창립해 이후 줄곧 회장직을 맡고 있다. 그는 "갈수록 중요해지는 금융 관련 법률에 대한 연구를 활성화하기 위해 학회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학회는 매년 춘계,하계,동계 3회에 걸쳐 금융법과 관련한 주요 현안에 대한 학술발표회를 연다. 그동안 전자금융거래법 도입,통합금융법 제정,사모투자전문회사의 법적 쟁점,미국 금융개혁법 등을 주제로 21회의 발표회를 진행했다. 지난달 30일에는 '키코(KIKO) 제2라운드'를 주제로 고려대에서 춘계 학술발표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들을 비롯해 금융사 임직원,변호사,판사,검사 등 50여명이 몰려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

정 회장은 "키코 상품 자체가 문제가 많아 중소기업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봤다거나, 가입한 기업이 무조건 다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견해는 양쪽 모두 잘못됐다고 본다"며 "기업이 먼저 요구해 가입한 사례도 있고 은행이 권유한 사례도 있는 만큼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판단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정 회장은 1972년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상법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충북대,경찰대에서 교수를 하고 미국 워싱턴대,독일 뮌스터대 등에서 객원교수 생활을 하다 1990년부터 고려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법무부 법무자문위원회 위원,국회 입법지원 위원 등을 겸임하고 있다.

▶ 준법지원인

기업에서 경영진이나 임직원의 법률 · 정관 준수,업무 적정성을 감독해 위법과 분쟁을 예방하는 역할을 맡는다. 지난달 이 제도를 담은 상법 개정안이 공포돼 1년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 4월부터 시행된다. 일정 규모 이상의 비금융 상장회사에 두게 된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