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논란이 된 '초과이익공유제'와 관련,재계의 의견을 일부 수용할 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정 위원장은 13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에서 열린 '삼성그룹 · 협력사 동반성장 협약식'에 참석,초과이익공유제 명칭을 '이익공유제'로 바꿔 부르며 비판론 무마에 공을 들였다.

대기업과 중소협력사 간 이익공유 방식도 "현금 지급이 아니라 협력업체의 장기 발전을 위해 이익 일부를 기업 자율적으로 비축해 사용토록 하겠다"며 기존 입장에서 한발 물러서는 듯한 설명도 곁들였다.

재계는 정 위원장의 언급 중 "현금 지급이 아니다" "기업 자율적으로 쓰도록 하겠다"는 대목을 주목하고 있다. 이날 협약식에 참석했던 재계 고위 관계자는 "대기업 초과 이익의 일정 부분을 떼어내 동반성장기금을 조성하고 이 기금을 중소협력사 지원에 쓰자는 것이 정 위원장의 생각인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며 "정 위원장의 이날 발언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지만 재계의 지적을 일부 받아들인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여론 뭇매에 한발짝 물러선 정운찬

정 위원장은 기업 이익의 일부를 협력사와 나누도록 한다는 초과이익공유제를 "계획대로 추진하겠다"면서도 기업들의 강한 반발을 의식한 듯 명칭과 내용에서 유화 제스처를 취했다. 그는 삼성그룹 동반성장 협약식 축사를 통해 '초과이익공유제' 대신 '이익공유제'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정부 내에서조차 초과이익을 어떻게 산정하느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뭇매를 맞자 명칭에서 아예 '초과' 글자를 뺀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그는 또 "(이익을) 협력업체에 현금 형태로 주라는 것이 아니고 기술개발이나 고용안정화 등 협력업체의 성장기반을 강화하는 데 기업 자율적으로 사용하면 된다"며 기업 자율을 강조했다.

1위 그룹 삼성을 향한 압박도 잊지 않았다. 정 위원장은 "납품단가 압박에 무방비로 노출된 중소기업들 사이에서 오죽하면 '을사조약'이 '을(중소기업)'이 죽는다는 뜻이라는 얘기가 있겠냐"며 "양극화 해소를 위해선 대기업의 변화와 정부 의지가 필요한 만큼 삼성이 앞장서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동반성장위는 일정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실적을 점검해 평가할 것"이라며 "가이드라인은 실무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재계 관계자는 그러나 "기업 자율을 얘기하지만 동반성장위가 실적을 점검해 평가한다는 것은 결국 이익의 일부를 무조건 내놓으라는 것 아니냐"며 "협력사와의 다양한 상생협력 방안을 실천하고 있는 기업으로선 납득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동반성장 놓고 고민 커지는 삼성

정 위원장의 초과이익공유제를 강하게 비판했던 삼성의 기류에도 변화가 생기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김순택 삼성 미래전략실 부회장이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바람직한 방향으로 될 겁니다"라고 답하면서 이런 시각에 힘이 실리고 있다.

앞서 이 회장이 지난달 10일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 때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강하게 비판할 때와는 분위기가 상당히 다른 것으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삼성 관계자는 김 부회장의 언급과 관련,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나오지 않은 만큼 지금 도입을 검토하는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지만 "가이드라인이 나오면 보고 결정할 것"이라며 여운을 남겼다.

이날 행사를 김 부회장이 직접 나서 챙긴 것도 정부에 최대한 협조하겠다는 뜻을 보이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일반적으로 이 회장이 나서지 않는 대외행사는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이 맡아왔다.

다만 그룹 내부적으론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더 많다는 것이 삼성 안팎의 시각이다. 재계 관계자는 "협력사를 위해 얼마의 이익을 떼내야 하는지,해외 협력사 등에는 어떻게 혜택을 줄 것인지 허점이 많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재계 일각에선 정 위원장이 주도해온 초과이익공유제를 놓고 정부 내에서 이견이 많은 데다 본인 스스로 후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만큼 동반성장위 실무협의 과정에서 기업들의 의견이 더 많이 반영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김수언/김현예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