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내과 전문의를 딴 이모씨(40)는 광주광역시에서 봉직의(페이닥터)로 지내고 있다. 서울로 올라가야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인데 개원 비용이 만만찮은 데다 마땅한 자리도 나지 않아 한숨만 나온다. 게다가 요즘엔 전문병원과 네트워크 클리닉이 워낙 강세라 어떻게 홀로 서야 할지 막막하다.

젊은 의사들의 개원 문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의사 수가 늘고 병원급 의료기관과 전문병원 및 네트워크 클리닉이 커지면서 개원 여지가 좁아지고 있는 탓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05년 신규 개원한 의원은 2479곳이었으나 2009년에는 1986곳으로 크게 줄었으며 지난해 2001개로 소폭 늘었다. 같은 기간 폐업한 의원은 2005년 1613곳,2009년 1487곳,2010년 1559곳이었다. 당해연도 개원 대비 폐원 비중은 2005년 65.1%에서 2009년 74.9%,2010년 77.9%로 높아졌다. 특히 의사들의 개원 연령(재개원 포함)은 2004년 37.5세,2005년엔 37.6세였으나 지난해에는 42.9세로 껑충 뛰었다. 그만큼 개원 환경이 날로 열악해지고 의료계의 역동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의료계 관계자는 "1997년 이후 신설된 포천중문의대(현 차의과학대),가천의대,을지의대 등 8개 의대에서 2007년 이후 신규로 추가 배출하는 전문의가 매년 300여명에 달하는 데다 2005년 909개였던 병원 수가 지난해 1315개로 44.7%나 늘어나면서 개원하려는 젊은 의사를 흡수하자 개원 추세가 약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요양병원이 이 기간 203개에서 867개로 4.27배 증가한 것도 한 요인이다.

윤성민 의료전문 아라컨설팅 대표는 "먼저 개원한 선배 의사들이 도산해 경제적으로 매우 힘들다는 소식을 접하는 후배들이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해 개원 의지를 접고 봉직의로 돌아서는 추세"라며 "경영을 잘 모르는 데다 직원을 통솔할 리더십을 배우지 못한 신세대 의사들이 대형 네트워크 병원과 맞서는 것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수원 정자동에 40억원짜리 5층 빌딩을 매입해 메디컬빌딩(병의원 집단 입주 건물)으로 임대 중인 신모씨는 "통상손익분기점을 맞추기 위해선 내과는 5000명,정형외과는 3만명의 주민이 사는 도시에 들어서야 하고 역세권과 가까우면 최적의 입지로 꼽힌다"며 "이곳엔 2년 후 1만2000가구가 입주할 예정인데도 의사들의 문의가 없다"고 전했다.

천안의 김모 정형외과 원장(43)은 "4년 전 7억여원을 투자해 매달 2000만원 안팎을 벌고 있다"며 "적자를 보지 않고 이 정도 운영하는 것도 선후배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의대 졸업 당시엔 졸업생의 5%가 교직,30%가 봉직의로 진출하고 나머지 65%가량이 개원했는데 지금은 점점 봉직의 비중이 올라가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수원의 A대학병원 관계자는 "임상강사(펠로)라 불리는 대학병원 내 고참 레지던트들은 인근 병의원에서 '높은 몸값'을 부르지만 교수로 남을지,좀 더 임상경험을 쌓을지,개원하는 게 좋을지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