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3 · 11 대지진 여파로 202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을 25% 줄인다는 목표를 포기하자 정부가 기업들의 반대에도 불구,2015년부터 전면 도입하기로 한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시행을 늦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에 앞장서온 일본이 궤도를 수정한 데다 유럽연합(EU)이 흔들리고 미국 중국 등은 여전히 소극적인 마당에 한국이 앞서 나갈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하면 생산비 부담이 늘어 결국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녹색 강국도 좋지만 기업에 많은 부담을 주는 정책인 만큼 냉정히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 · 중 · 일 뒷짐지는데…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도입을 위한 법률안은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입법 절차를 밟고 있다. 정부는 기업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배출권 할당 비율과 할당량 변경 등에 관한 내용을 일부 수정한 뒤 2015년부터 시행한다는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2월 말 재입법예고했고 최근엔 차관회의를 열어 가결했다. 앞으로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산업계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자는 배출권 거래제 도입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선제적 도입을 통해 기업에 무리한 부담을 줘서는 곤란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한 관계자는 "선대응한다고 해서 우리 산업구조가 발빠르게 탈바꿈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고 지적했다.

임상혁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은 "미국 일본 중국 등도 관망하는데 우리가 먼저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산업계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교토의정서 채택 후 온실가스 감축을 밀어붙이던 일본이 물러선 데는 대지진 여파 외에 산업계의 목소리를 반영한 결과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2012년부터는 온실가스 목표관리제가 시행되는 만큼 2~3년 정도 데이터를 모은 뒤 배출권 거래제를 시행해도 늦지 않다"고 강조했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도 "일본이 각료회의에서 탄소배출권 거래제 도입을 무기한 연기한 만큼 정부 측에 시행 시기를 2015년으로 못박지 말고 국제동향을 지켜보면서 결정하자는 의견을 전달하고 있지만 별다른 답변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서둘러 입법하지 말고 정밀하게 제도 도입의 필요성과 도입시 영향 등을 검토해서 결정해도 늦지 않는데 서두르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대한상의는 법안이 국회에 상정되면 산업계 의견을 모아 제도 도입 연기를 요청하는 건의서를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거래제 도입되면 생산비 늘어

산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가 도입되면 2020년에는 제조업 평균 생산비가 최대 1.27%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금속광물 업종의 생산비 증가율이 6.53%로 가장 컸고 철강(5.45%) 시멘트(4.88%) 인쇄 · 출판(2.18%) 석유화학(1.92%) 정밀기계(1.62%) 석유 · 석탄(1.47%) 등이 뒤를 이었다. 그 결과 국내총생산(GDP)은 0.58%,수출은 0.18%,고용은 0.4% 각각 감소할 수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산업연구원은 정부가 2020년 온실가스 배출 전망치(BAU) 대비 20% 감축 목표를 제조업에 부과하고 기업이 배출권 할당량 중 정부에 돈을 내고 구입해야 하는 유상할당 비율을 50%,배출권 가격을 t당 5만원으로 가정해 제조업 생산비를 분석했다. 유상할당 비율은 시행령을 통해 정해질 예정이다.

배출권을 운용하는 정부 부처가 기업의 생산과 투자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기업 관계자는 "만에 하나라도 배출권을 할당받지 못하면 신규 사업 참여가 힘들어지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김수언/김현예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