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과 관련해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두 가지 꿈을 갖고 있었다. 시베리아에서 석유 · 가스를 개발해 이를 파이프 라인으로 한반도로 들여오고,해외 곡창지대를 확보해 북녘동포에게 쌀을 아낌없이 보내주겠다는 게 정 명예회장의 생각이었다. 이를 위해 세운 회사가 현대자원개발(1990년~1998년12월)이었다.

현대중공업이 정 명예회장의 뜻을 잇겠다는 의미로 같은 사명을 지닌 자원개발 전문회사를 신설한다고 5일 발표했다. 현대중공업을 비롯 현대종합상사,현대미포조선,현대오일뱅크 등 계열사들이 주주로 참여하는 회사로 범(汎)현대가의 해외 자원 확보에 첨병 역할을 할 전망이다. 대표이사 사장엔 양봉진 현대종합상사 부사장(사진)을 선임했다.

◆현대중공업그룹 자원 개발 강화

현대자원개발(Hyundai Energy & Resources)의 총 자본금은 500억원 규모다. 현대종합상사의 자원개발팀을 기본 인력으로 하고,향후 투자확대 추이에 따라 신규 인력도 채용할 예정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투자 물건이 확정되면 증자를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의 역할은 기존 사업 관리와 신규 투자다. 현대중공업과 현대종합상사가 보유하고 있는 자원개발 사업을 위탁받아 계속 수행하고 원유와 가스,바이오연료 및 에너지와 농림업 광산업 등에서 유망 사업을 발굴하겠다는 의미다.

현대중공업은 이미 현대종합상사와 함께 전 세계 8개국에서 11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마다가스카르 니켈 광산과 예멘 LNG 개발사업,러시아 연해주 농장 등에 대한 투자금액만 총 5억2000만달러에 이른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이들 사업을 현대자원개발이 위탁 관리하되 수익은 기존 회사로 귀속된다"고 설명했다.

현대자동차,현대제철 등 범현대가 계열사 가운데 자원 수요가 많은 기업들이 있는 만큼 업계에선 현대자원개발의 역할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자동차용 배터리에 들어갈 리튬을 비롯 철광석,제련용 석탄 개발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치열해지는 자원 확보 경쟁

현대중공업이 2009년 현대종합상사를 인수,자원 전문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현대자원개발을 따로 설립하려는 이유는 '규모의 경제'를 갖추기 위해서다. 갈수록 해외 광구 투자에 들어가는 비용은 많아지는데 현대종합상사의 자금 여력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들다는 판단에서다.

현대종합상사 관계자는 "일종의 자원 전문 펀드를 만드는 것으로 이해해도 된다"고 설명했다. 대규모 자금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현대중공업 계열사들이 증자 형태로 '총알'을 지원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앞으로 현대자원개발이 자원을 개발하면 여기에서 나오는 원자재 무역을 현대종합상사가 담당하는 식으로 두 회사의 역할이 나뉠 것으로 알려졌다.

대규모 자금 확보가 가능해진 만큼 현대자원개발은 해외 자원전문회사에 대한 인수 · 합병(M&A) 계획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자원개발의 출범으로 국내 기업 간 자원 개발 경쟁은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삼성물산 상사부문,LG상사,SK네트웍스 등을 포함해 4대 그룹마다 자원 전문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다. 포스코도 대우인터내셔널을 인수,해외 광구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양 신임 사장은 서울대 산림자원과를 졸업했고 2001년 세종대 경영대학원장을 거쳐 2008년 현대중공업그룹에 합류했다. 현대중공업 전무,현대종합상사 부사장을 맡아 재무 및 자원개발 부문을 총괄해 왔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