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달러화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줄곧 세계의 기축통화였다. 그러나 중국 위안화와 유로화의 부상,미국 경제의 심각한 쌍둥이 적자(무역 · 재정적자) 문제 등으로 '팍스 달러리움(달러 중심의 세계경제질서)'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당장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잃진 않더라도 최소한 '독주'만큼은 끝이 보인다는 지적이다.

◆미국의 경제지배력 약화

배리 아이켄그린 UC버클리 교수는 2일자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를 통해 "위안화 및 유로화의 도전과 금융기술의 발달,달러의 안전자산 지위 위축으로 전 세계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아직은 미 달러와 다른 나라 통화의 교환이 전 세계 외환시장 거래의 85%에 달하고,미 달러화가 전 세계 외환보유액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달러화의 기축통화 지위를 보장해왔던 요인들이 변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워런 버핏 벅셔 해서웨이 회장도 이날 C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세계경제 시스템에 대한 미국의 지배력이 약화되면서 시간이 갈수록 달러의 중요성이 감소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아이켄그린 교수는 달러의 지위가 약화되는 주요 원인으로 위안화와 유로화의 도전을 꼽았다. 그는 "최근 유로존이 재정위기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만 유럽 국가들은 유로화를 포기하지 않았다"며 오히려 미국보다 더 단호하게 재정적자 감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유로존 전체의 신용이 뒷받침하는 '유로존 공동채권(e-채권)'이 발행되면 미 국채에 대적할 수 있게 되고 유럽 채권시장 통합의 초석을 닦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中 외자유치도 위안화로

중국 위안화의 국제화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중국 인민은행은 이날 웹사이트를 통해 위안화 무역결제 지역을 20개 성(省)과 시(市)에서 전국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위안화 국제화 촉진안을 발표했다. 위안화 무역결제 참여 기업은 허용 초기인 2009년 7월 365개사에서 작년 말 6만7000여개사로 급증했다. 위안화 무역결제 규모도 지난해 1분기 183억위안에서 4분기 3126억위안으로 17배 이상 뛰었다. 허용 지역이 전국으로 확산되면 위안화 결제 확대에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인민은행은 중국 진출 외국계 은행 가운데 HSBC 등 5곳에만 허용돼 있는 은행 간 채권거래 참여 범위도 늘려나가기로 했다. 해외투자에 이어 외자유치 때도 위안화를 사용하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중국은 또 홍콩에 역외위안화센터를 구축,외국 기업이나 은행들이 손쉽게 위안화를 운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전략이다. 홍콩에선 이미 수십개 외국 기업이 위안화로 표시되는 '딤섬' 채권을 발행했다. 올해 중 홍콩증시에 위안화 표시 증권 거래도 시작할 예정이다.

◆美 재정적자도 달러 주도력 약화 요인

달러가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줄어드는 것도 달러의 지위를 흔들고 있다. 미국의 국가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75%에 달한다. 재정적자와 나랏빚이 계속 늘어나 미국이 달러 자산의 가치를 지킬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확산되면 지금처럼 '안전하다'는 이유로 투자자들이 미 국채에 몰리는 현상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미국은 지방정부의 재정부실도 심각하다. '닥터 둠'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가 세운 금융컨설팅업체 RGE는 이날 보고서에서 "향후 5년간 지방채의 디폴트(채무불이행) 규모가 1000억달러에 육박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성완/오광진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