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적인 기법으로 무장한 투자은행(IB) 등 대형 금융회사 출현 없이는 한국 경제의 미래도 없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한복판에서 자본시장법이 시행되는 바람에 빛을 보지 못해 많이 아쉽습니다. "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시행 2주년을 맞아 6일 가진 인터뷰에서 국내 자본시장에 대한 애정과 변화 의지를 여과없이 내비쳤다. 그는 미리 전달받은 질문 요지에 직접 일일이 답을 적었다며 한 시간 동안 특유의 논리와 달변으로 자신감을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2004년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금융정책국장 시절 골격을 만들고 재정부 차관 때 국회를 통과한 자본시장법을 시행시킨 장본인이다. 하지만 그는 "당초 기대와 달리 금융의 변화가 미미해 제대로 된 '빅뱅'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자본시장이 '경제의 심장 또는 엔진'으로 기능하고 '신산업의 요람'이 돼야 한다는 지론도 여러 차례 강조했다.

▼2009년 2월 자본시장법 시행으로 '한국형 IB' 출현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결과는 기대에 못 미쳤다.

"미증유의 금융위기 때문에 입법 과정에서 규제를 확실하게 풀지 못했고,이후 법 운영도 보수적으로 한 결과다. 자성하고 있다. 원전 등 전 세계 초대형 프로젝트에서 대부분 한국 기업들이 수주 경쟁을 벌이지만 결정적으로 파이낸싱에서 밀린다. 정부가 나서서라도 서둘러 글로벌 수준의 IB를 만들어야 한다. "

▼정부가 어떻게 주도한다는 얘기인가.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정책금융공사 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의 재편을 통한 대형화와 기능 강화를 모색하겠다. 앞으로 정책금융 시스템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다. 민간 섹터에서도 강력한 IB가 출현해야 한다. 수많은 재무적 투자자(FI)들의 돈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혁신적인 금융기법을 동원하는 IB가 없으면 대한민국의 미래도 어둡다는 생각이다. "

▼정책금융기관 재편의 구체적인 구상은.

"시간이 좀 필요하다. 정책금융공사와 산업은행은 금융위 소관이지만 수출입은행은 기획재정부,무역보험공사는 지식경제부 산하다. 공공부문 IB 육성을 위한 종합적인 그림을 그려 정부 차원에서 논의를 시작하려고 한다. 대형 프로젝트는 끊임없이 나오는데 그간 논의는 너무 보수적이고 더디게 진행됐다. 상황 변화에 맞게 능동적으로 바람처럼 빠르게 해결해야 한다. "

▼부처 간 공감대가 필요한 사안 아닌가.

"지난달 말 대통령이 참석한 공공기관 혁신 세미나 자리에서 직접 얘기했다. 공공부문이 앞장서야 한다는 데 대해 관계부처 장관들은 물론 대형 국책은행장들도 입을 모아 '해보자'는 분위기였다. "

▼우리금융 민영화에도 그 같은 컨셉트가 적용되나.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위원들이 우선 판단할 사안이지만 적용을 배제하지 않는다. "

▼우리투자증권 분리 매각도 가능한가.

"논의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국민경제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와야 한다는 목표 아래 여러 가능성을 열어야 한다. 우리투자증권 매각 틀도 좋은 기회로 쓸 수 있다. 소속 집단의 이해관계를 떠나 마인드를 오픈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증권업계 구도가 변화 없이 매우 단단하다. 민간 대형 IB는 어떻게 유도할 것인가.

"작은 증권사들이 시장 내에서 나름의 역할을 갖는 것은 바람직하다. 전문화 · 특화 전략은 제도적으로도 뒷받침해줄 생각이다. 다만 대형 IB 출현도 성사돼야 한다. 대형화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규제 혁신을 통해서 폭발적인 에너지를 낼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자본시장법을 점검하고 있다. 시행 2주년이라고 의례적으로 들여다보는 차원이 아니라 전면적 개편안을 모색 중이다. 시대의 획을 긋는다는 심정으로 IB 육성에 나서볼 작정이다. "

▼대형 증권사 간 합병도 필요하다고 보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꼭 쉽지 않다고 보지는 않는다. 현재 상황이 오래갈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10여년 전 30개에 달하던 은행 중 몇 개가 남아 있나. 금융시장과 금융산업은 지금도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앞으로 10년 뒤에는 금융산업 윤곽이나 흐름이 또 상당히 바뀌어 있을 것이다. 자본시장법이 그 변화의 동력 중 하나가 되게 하겠다는 생각이다. "

▼자본시장법 개편의 방향과 일정은.

"자본시장법이 빅뱅의 계기를 마련하지 못해 상당히 아쉬웠다. 그래서 이번엔 특별히 '시장 친화적'으로 해볼 생각이다. 법 제정 당시는 정부가 메시지를 주면서 주도했지만 이젠 거꾸로 시장에 맡기려고 한다. 시장에서 그리는 자본시장과 금융산업은 어떤 모습인가,미래의 지평을 어떻게 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해 소통하고 시장에서 답을 도출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생각보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질질 끌지는 않겠다. 여러 정치 일정을 고려해보면 서둘러 끝내야 한다. "

▼헤지펀드 등 사모펀드 규제 완화에 관심이 많다.

"외국 사람들은 한국에서 사모펀드를 만들고 마음대로 장사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 땅에서 헤지펀드를 못 만든다. 모순된 상황이다. 혁신적인 금융을 만드는 게 내 꿈이다. 시장에서 레버리지를 활용해 통상적인 예대로는 커버 안 되는 자금을 공급해주고,신산업을 육성하고,기존 산업을 구조조정해야 한다. 헤지펀드도 같은 맥락에서 판단할 것이다. "

▼헤지펀드 투자전략의 핵심인 운용상의 규제가 문제인데.

"운용 규제는 대폭 완화하되 국제적 동향을 감안해 필요한 감독은 강화하겠다. 또 투자자들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다양한 간접투자상품이 개발되도록 규제를 완화하겠다. 연기금과 PEF(사모투자전문회사)의 역할도 강화해야 한다. "

▼자본시장의 바람직한 미래 모습은.

"세 가지 비전이 있어야 한다. 우선 '경제의 심장' 또는 '경제의 엔진'으로 실물경제 지원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또 '신산업의 요람'이 돼야 하며 마지막으로 '전 국민의 안정적 투자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

▼글로벌 시장에서 안정이 강조되고 있다. 안정과 성장 중 어느 쪽에 무게 중심을 둘 것인가.

"금융시장 안정은 기본적인 화두다. 내 판단으로는 여전히 위험 요인이 남아 있지만 이제 사전적으로 제어 가능한 수준이다. 지금은 금융산업에도 뭔가 성장을 위한 모멘텀이 필요한 때다. 글로벌 위기를 겪으면서 금융산업에 대해 규제 일변도로 나간 것은 맞지 않다고 본다. 국제적인 새 규제 틀은 당연히 수용하겠지만 금융투자회사 등에 자율 영역을 충분히 확보해주고 금융산업을 이륙시킬 시점이다. '빅뱅'의 틀을 다시 만들어볼 생각이다. "

백광엽 기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