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보유 상선 지분, 시장에 분산매각 등 포함
현대그룹 우선협상자 지위 박탈


현대건설 채권단(주주협의회)이 현대그룹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최종 박탈했다.

이에 따라 채권단은 예비협상대상자인 현대차그룹과의 협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채권단은 현대그룹의 반발을 우려해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하더라도 현대그룹의 현대상선 경영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중재하기로 했다.

채권단은 20일 주주협의회에 상정한 현대그룹과 주식매매계약 체결 안건이 절대다수의 반대로 부결됐으며, 양해각서 해지안건은 절대다수의 찬성으로 가결됐다고 밝혔다.

이외에 이행보증금 2천755억원의 처리 문제를 운영위원회에 위임하고, 현대차그룹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 부여 여부를 추후 주주협의회에서 결정하기로 한 안건도 절대다수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채권단은 이에 따라 현대그룹 컨소시엄과 현대건설 매각 절차를 더는 지속하지 않기로 했다.

채권단은 현대그룹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박탈하면서 "현대그룹이 긍정적인 의사를 표명한다면 현대그룹 컨소시엄이 우려하는 사항에 대해 가능한 한 범위에서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채권단 관계자는 "현대그룹은 현대상선의 지분 처리 문제를 우려하는 것으로 시장에서 보고 있다"면서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간 이 문제가 최대한 조율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채권단은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하면 현대건설이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 8.3%를 시장 등에 분산매각해 현대그룹의 현대상선 경영권이 위협받지 않도록 양측의 입장을 조율할 예정이다.

유재한 정책금융공사 사장은 "현대그룹, 현대차그룹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조율할 것"이라며 "현대상선 지분을 시장에 분산 매각하거나 국민연금 등에 매각하는 방법 등이 중재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채권단이 이러한 중재안을 들고 나온 것은 현대그룹, 채권단, 현대차그룹간 벌어지는 `이전투구식' 싸움을 끝내고 송사없이 현대건설 매각을 원활하게 마무리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또 현대그룹이 물러날 수 있도록 퇴로를 열어주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동안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에 사활을 건 것은 현대건설 보유의 현대상선 지분(8.3%)이 경쟁상대인 범현대가로 넘어가면 현정은 회장의 현대그룹 계열사에 대한 경영권이 전체적으로 흔들릴 수 있기 때문으로 풀이됐다.

현대그룹은 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현대로지엠-현대엘리베이터로 이어지는 순환 출자 구조를 갖추고 있는데, 현대상선은 현대증권과 현대아산, 현대유엔아이, 현대경제연구원 등의 최대 주주다.

현대그룹이 가진 현대상선의 지분은 가장 많은 20.60%를 보유한 현대엘리베이터를 비롯해 각 계열사와 그 우호지분을 합쳐 43.4%이다.

그러나 현대중공업과 현대차 등 범현대가의 지분도 32.29%에 달해 현대건설 보유 지분 8.30%가 현대차로 넘어가면 양측의 지분이 비슷해져 현 회장의 경영권도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그렇다고 현대건설을 현대차그룹에 `조건부 매각'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서로 `윈-원'할 수 있도록 채권단이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채권단은 이와 함께 운영위원회에서 현대차그룹에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부여하는 방안을 논의한 뒤 가급적 연내 주주협의회를 열어 이 안건을 상정할 예정이다.

채권단의 75% 이상 동의를 얻으면 현대차그룹은 우선협상대상자 자격을 얻는다.

현대그룹은 이날 채권단의 MOU해지와 관련해 "MOU규정과 법에 위배돼 명백한 무효"라고 주장했다.

현대차그룹은 "채권단이 법과 입찰규정에 따라 공정하게 처리해주길 기대한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채권단의 중재안에 대해서는 "아직 우리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반응을 보였다.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fusionj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