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14일 6000억달러에 이르는 2차 양적완화를 지속하고 제로금리(연 0~0.25%) 기조를 상당기간 유지키로 한 배경은 크게 봐서 두 가지다. 좀체 떨어지지 않는 높은 실업률과 물가 하락에 따른 디플레이션 우려다. 벤 버냉키 FRB 의장도 최근 기업인들과 만난 자리에서나 방송 인터뷰를 통해 이 문제를 심각하게 부각시켰다.

◆실업률이 안 떨어지니…

지난달 미국의 평균 실업률은 9.8%로 전달보다 0.2%포인트 높아졌다. 버냉키 의장은 지난달 30일 오하이오주에서 기업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경기 회복 속도가 실업률을 실질적으로 낮추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14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발표와 일치하는 내용이다.

더욱이 현재 미국에서 6개월 이상 장기 실업자 비중은 전체 실업자의 40%를 웃돈다. 버냉키 의장이 "장기 실직자들이 매우 걱정"이라고 우려한 이유다. 높은 실업률이 장기화되면 소비자,특히 중산층 이하의 가계는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잃게 마련이다. 이는 소비를 위축시켜 다시 경기 둔화를 부르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버냉키는 경제성장률이 연평균 2.5% 이상은 돼야 안정적인 실업률을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지난 5일 CBS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렇지 않으면 5~6% 수준의 정상적인 실업률로 떨어지는 데 4~5년이 걸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디플레이션 우려도 여전

정상적인 경기 상황에서 물가가 낮은 것은 좋은 현상이다. 하지만 경기 회복이 부진한 가운데 물가까지 떨어지는 디플레이션에 빠지지 않을까 FRB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물가가 떨어지면 기업들이 근로자에게 주는 임금 수준이 낮아진다. FOMC 발표문은 "FOMC가 판단하는 수준에 비해 근원물가가 낮다"고 적시했다.

실제로 지난 10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달보다 0.2% 상승하는 데 그쳤다. 가격 변동성이 큰 식료품과 에너지 가격 상승률을 제외한 근원물가는 8월부터 석 달간 변동이 없었다. 1년 전인 지난해 10월과 비교한 근원물가 상승률은 0.6%로 1957년 통계를 낸 이후 가장 작은 폭이다.

FRB가 내부적으로 목표로 잡은 물가상승률은 2% 정도다. 이 때문에 FOMC는 내년 6월 말까지를 시한으로 총 6000억달러를 계속 풀기로 결정하면서도 물가 걱정은 덜 수 있었다. 오히려 달러를 풀어 인위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조장해서라도 경기 회복 속도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양적완화 효과 자신

FOMC가 2차 양적완화 조치를 지속하기로 한 것은 효과를 자신한다는 의미가 된다. 버냉키는 "양적완화를 취하지 않았으면 상황이 더 악화됐을 것"이라고 1차 양적완화 조치를 자평했다. 그만큼 2차 양적완화에도 기대를 건다는 뜻이다.

버냉키는 야당인 공화당과 일부 경제 전문가들의 비난과 우려를 일축했다. 이들은 달러를 계속 살포하면 걷잡을 수 없는 물가 상승이 야기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CBS 출연 때 버냉키는 "(마음 먹으면) 15분 만에라도 기준금리를 올릴 수 있다"며 "물가는 100% 잡을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다만 지금은 그럴 시기가 아니다"고 말했다. 월가 펀드매니저의 60%는 FRB가 2012년까지 저금리 정책을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버냉키는 경기가 회복됐다가 다시 침체하는 '더블딥'도 오지 않을 것 같다고 예상했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