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바이스란 이름을 들었을 때 우리는 강하다(tough)든가,멋지다(cool)는 이미지를 곧바로 떠올립니다. 하지만 '삼성'을 들었을 때는 별 다른 이미지가 없습니다. 삼성 제품이라면 좋은 품질의 제품이라는 생각은 들지만,사람 냄새가 나는 문화 코드는 보이질 않습니다. "

유신 첸(Yuxin Chen) 미국 노스웨스턴대 켈로그경영대학원 교수(39)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일정한 성취를 이룬 한국 기업들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기에 부족한 점이 있다면 문화 코드"라며 이같이 말했다.

첸 교수는 마케팅 학계의 젊은 스타로 꼽힌다. 그는 중국 푸단대에서 물리학 학사,저장대에서 컴퓨터공학 석사를 받은 뒤 미국으로 건너가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워싱턴대에서 마케팅 박사학위를 땄다. 소비자의 선호도 등에 관해 대량의 데이터를 가공해 판단의 근거로 삼는 계량 마케팅 분야가 전공이다.

정량적인 데이터에 기반하기보다는 정성적인 심리학 · 사회학 분석론이 마케팅을 좌우하던 1990년대 말 그의 논문들은 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1999년,불과 스물여덟 살이었던 그에게 뉴욕대는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해달라고 요청했다.

현재 그는 마케팅 분야의 '톱 4 저널'로 꼽히는 '마케팅 리서치 저널(JMR)'과 '매니지먼트 사이언스''마케팅 사이언스''계량 마케팅과 경제학(QME)'에서 편집고문(associate editor)으로 활동하고 있다.

▼성취에 비해 젊어서 놀랐다. 얼굴도 동안이다.

"아니 젊지 않다. 벌써 서른아홉 살이다. (웃음)"

▼20대에 강의를 시작했고 30대에 톱 마케팅 저널들의 편집자라면 상당한 성취인데,어떻게 가능했다고 생각하나.

"글쎄,운이 좋았다. 물리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계량 마케팅 분야를 공부했고 그 분야에 대해 1990년대 중반부터 사람들의 관심이 급격히 쏠리기 시작했다. 시기가 잘 맞았다. "

▼계량 마케팅은 데이터를 중시한다. 그러나 과거 데이터를 본다 해서 미래를 정확히 판단할 수는 없지 않나.

"점쟁이 노릇을 할 수는 없지만,기업이 미래에 대응하는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거나 사업을 벌일 때 실패 확률이 70~80%에 이른다 치자.과거의 데이터를 잘 분석해 시장 선호도를 파악하고 접근 전략을 수립한다면 이 비율을 30~40%로 낮출 수도 있다. "

▼기술발전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마케팅을 일종의 '포장술'로 폄하하기도 한다. 비(非)본질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제품이 없으면 마케팅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마케팅은 회사의 사고방식을 결정한다. 마케팅 부서는 소비자와 회사의 다른 부서를 연결해주는 부서다. 연구 · 개발(R&D)을 중시하는 많은 기업들이 기술지상주의의 함정에 빠진다. 기술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기능을 추가하면 제품이 더 좋아진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사실은 그렇지 않다. 소비자의 입장을 중시해야 한다. 그게 마케팅이 해야 할 일이다. 제약회사 화이자의 항생제는 기능적으로 경쟁사 애보트의 것보다 좋지 않았지만,항생제를 먹기 쉽게 하는 'Z팩'이라는 새 포장으로 시장에서 더 큰 성공을 거뒀다. 단순한 포장술이라고 무시해선 안 된다. "

▼모든 종류의 회사에서 마케팅이 중요하다고 단언할 수 있나.

"마케팅이 중요하지 않은 회사는 없다. 심지어 석유를 팔기만 하는 회사에서도 마케팅을 해야 한다. 원유 유출 사고로 소비자 신뢰를 회복해야 하는 BP를 보라."

▼세계적인 마케팅 트렌드를 세 가지만 꼽아 달라.

"첫째는 지리적인 마케팅이다. 달리 말하면 사용자의 위치에 기반한 서비스다. 포스퀘어(4squre)가 좋은 사례다. 소비자가 서 있는 장소 근처의 상가들이 소비자의 휴대폰으로 할인쿠폰을 보내는 등 표적 마케팅이 앞으로 무척 활발해질 것이다. 둘째는 데이터에 기반한 맞춤형 마케팅이다. 오프라인으로 DVD를 빌려주는 게 아니라 온라인으로 스트리밍을 해 주는 넷플릭스나 온라인서점 아마존은 소비자들의 취향을 스스로 파악해 맞춤형 추천을 해준다. 대용량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것이 중요해지는 이유다. 셋째는 '신흥시장의 관점'을 반영한 글로벌 마케팅이다. "

▼글로벌 마케팅이 어째서 새 트렌드인가.

"신흥시장의 관점이라는 게 중요하다. 과거엔 다국적 기업들이 하나의 전략으로 글로벌 시장을 공략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지역만의 수요와 문화를 반영해야 한다. 와이어스사의 종합 비타민 제제 '센트룸'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지만,중국에선 로컬 업체인 골든파트너스사의 프리미엄 비타민 제제가 훨씬 비싸게 잘 팔린다. 이유는 골든파트너스가 비타민을 선물용으로 포지셔닝했기 때문이다. 고급스레 포장하고 높은 가격을 책정하자 중국인들은 이 제품을 기꺼이 샀다. 이런 것이 현지 관점을 반영하는 것이다. "

▼현지화 전략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 세계적으로 반창고 시장의 상당수는 미국기업 존슨앤드존슨이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에선 윈난바이오란 소규모 회사가 새살을 돋게 하는 중국의 전통적인 약초를 반창고에 넣어 존슨앤드존슨의 아성을 위협한다. 존슨앤드존슨 직원들은 중국시장을 본다며 정장을 빼입고 호텔에서 머물렀지만,윈난바이오 직원들은 허름한 점퍼 차림으로 소매상들을 찾아다녔다. 존슨앤드존슨은 중국의 전통약초를 쓰는 것을 '위험하다'거나 '생소하다'고 봤지만 윈난바이오는 그렇지 않았다. "

▼중국과 같은 신흥시장엔 각종 규제가 많다. 대응 방법은.

"규제에 적응하는 것도 현지 관점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그리고 중국에만 특별히 규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또 삼성을 비롯해 많은 기업들이 중국에서 잘 사업하고 있다. 규제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장 구도가 달라지는 것 같다.

"이번 금융위기는 한국 기업들에 분명히 기회가 됐다. 원화가치 하락으로 수출이 늘기도 했지만,미국 · 유럽 기업들의 시장지배력이 크게 약화됐기 때문이다. 앞으로 원화가 다시 절상되겠지만 나는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한국 기업들이 자신의 브랜드와 가치에 보다 집중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

▼한국 기업들에 조언한다면.

"제품의 질은 이미 충분히 좋다. 현대자동차 같은 경우 정말 엄청난 발전을 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부분에서도 대부분 상당히 노력하고 있다는 게 보인다. 한 가지 한국 기업들이 따라잡아야 할 점이 있다면 문화 코드다. 미국의 맥도날드나 리바이스에서 느낄 수 있는 문화적인 코드가 있지 않나. 삼성을 비롯한 한국 기업들에서는 그런 '느낌'을 받을 수가 없다. "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