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시장주의자와 반(反)신자유주의 대표학자가 '글로벌 인재포럼 2010'에서 주요 20개국(G20)의 역할과 금융산업의 공과(功過) 등 세계경제의 주요 이슈를 놓고 불꽃 튀는 고차원 논쟁을 벌였다.

한때 '세계 경제대통령'으로 불린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27일 서울 광장동 쉐라톤그랜드워커힐호텔에서 열린 '위기 이후 세계경제의 과제'를 주제로 한 기조 강연에서 주요 글로벌 경제 이슈에 대해 "시장자율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반면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글로벌 금융위기는 지나친 규제 완화로 경제주체의 탐욕을 통제하지 못했던 탓"이라고 각을 세웠다. 두 전문가는 글로벌 경제의 주요 이슈들에 대해서도 시각을 달리하며 불꽃튀는 설전을 벌였다.


◆美 경제 '더블딥' 벗어났나

그린스펀 전 의장과 장 교수는 대담 시작 직후부터 미국경제 전망을 놓고 곧바로 설전에 들어갔다. 포문은 장 교수가 먼저 열었다. 그는"미국과 영국 등에서 더블딥(반짝 회복 후 경기 재침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이미 아일랜드에서 더블딥 현상이 발생했고 아이슬란드와 라트비아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 경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크게 약화된 데다 지금도 경제회복 여부가 모호하다"며 "부동산 경기 침체가 심각하고,정부가 너무 빨리 예산을 삭감한 것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그린스펀 전 의장은 "더블딥 가능성이 현실화될지를 걱정할 때는 지난 듯하다"고 시각을 달리했다. 그는 "미국 경제가 전반적으로는 약한 회복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개별 기업 차원에선 생산성 증대에 따라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의 수익증가가 이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재고 증가 △높은 실업률 △대규모 재정적자 △위험회피 현상 확대 등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미국 경제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 있고,불확실성에 대한 시장의 두려움이 남아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G20회의' 경제 대표성 강화돼야

두 대담자는 G20 회의에 대한 평가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장 교수는 "주요 경제 이슈에 대한 의사결정 과정이 선진국 주도로 이뤄지고 있어 개발도상국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주 G20 재무장관회의에서 국제통화기금(IMF) 이사회의 개도국 지분이 늘었지만'충분하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라며 "G20의 결정 중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개도국들이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적지 않다"고 주장했다.

반면 그린스펀 전 의장은 "G20 회의가 세계 경제의 전체적인 구조를 완벽하게 반영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회담에서 모든 국가에 긴요한 토론이 이뤄지는 것은 맞다"고 반박했다. 그는 "G20에 상정된 주요 이슈는 국제적 관점에서 다뤄져야 하고,실제로 각국 간에 많은 조율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다만 "G20 회의 참석국 중 어느 나라도 회의에서 논의된 새로운 조치를 실제로는 시도하지 않는 게 문제"라며 "통화량 증대나 환율문제 같은 것을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아무리 토론해도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금융산업,세계 경제 살찌웠나

두 사람은 1990년대 이후 고속성장한 금융산업에 대한 평가도 달리했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세계 경제의 발전과정에서 금융업이 성장하는 것은 당연한 흐름이고,전 세계의 소득수준을 높이는 효과도 냈다"며 높은 점수를 줬다. 반면 장 교수는 "금융산업은 경제성장에 도움을 준 게 없다"고 평가절하했다.

장 교수는 "최근 중국의 급부상에도 불구하고 세계경제는 1960~1970년대와 비교할 때 성장세가 절반에도 못미친다"며 "금융상품의 혁신과 금융업의 성장이 없었어도 세계 경제는 크게 발전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히려 파생상품처럼 너무 복잡한 금융상품이 경제시스템만 복잡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일으켰다고 덧붙였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세계 주요국에서 전체 산업 중 금융 · 보험분야가 차지하는 비율이 커지고 있다"며 "미국뿐 아니라 중국 등 많은 나라에서 지난해 금융소득이 2007~2008년 수준보다 높아졌다"고 재반격했다. 그는 "50년 전 미국은 지금보다 건실한 경제체제를 보유하고 있었는데도 당시 평균 생활수준은 최근보다 크게 낮았다"며 금융산업의 기여를 재차 강조했다.

◆'차이나 리스크'엔 공감대

그린스펀 전 의장과 장 교수는 세계경제의 새 엔진 역할을 하고 있는 중국경제가 오히려 위협요인이 될 수 있다는 데는 의견을 같이했다. 장 교수는 "최근 10년간 세계 경제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중국의 부상"이라며 "그러나 중국은 최근 2~3년간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기부양용 재정을 가장 많이 투입해 향후 부작용에 시달릴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진단했다. 그는 "중국 경제가 어려움에 빠질 경우 전 세계에 파급효과를 끼칠 수 있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지금 중국은 지속가능한 일자리 창출을 고민하기보다는 단순히 당장 무언가를 짓고 생산하는 데 급급해하고 있다"며 "베이징에 가보면 사용처를 찾지 못한 텅빈 건물이 수두룩한데,이런 상태를 무한정 지속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현재 중국은 강한 인플레이션 압력을 받고 있다"며 "중국의 성장이 곧 둔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또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건은 언제나 경제학자들이 예측한 것보다 빨리 일어난다"며 "중국 당국자들을 포함해 여러 사람들과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살펴보고 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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