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물 다 챙겼어?추우니까 외투 입고 나가자."

지난 15일 오전 8시30분 서울 화곡동에 사는 공무원 조선경씨(40)는 아들(8)과 딸(4)의 옷차림을 꼼꼼하게 챙기고 집을 나섰다. 아파트 입구에서 딸을 유치원 버스에 먼저 태워보낸 후 아들과 걸어서 5분 거리의 강신초등학교로 향했다. 조씨는 "아이들을 등교시킨 후 지하철을 타고 광화문의 여성가족부 사무실에 도착하면 10시가 된다"며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4시간을 근무한 후 오후 3시에 퇴근해 다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다"고 설명했다.

조씨는 육아휴직 후 지난달 20일 복귀했다. 조씨는 "육아문제로 전일 근무는 불가능해 14년 동안 다녔던 직장을 그만둬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며 "마침 시간제 근무가 생겨 직장을 다니며 아이들도 돌볼 수 있게 돼 정말 다행"이라고 말했다.

◆여성 고용률 OCED 최저

지난 8월 기준 우리나라 여성의 고용률은 48.1%다. 고용률은 15세 이상 전체 인구 중 취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을 말한다. 경제활동이 가능한 우리나라 전체 여성 중 절반 이상이 미취업 상태란 뜻이다. 여성 고용률은 남성(70.5%)보다도 22.4%포인트 낮다.

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고용률이 가장 높은 네덜란드는 여성 고용률이 70.6%에 달한다. 남성 고용률(80.8%)과의 차이도 10.2%포인트로 한국의 절반 수준이다. 스웨덴도 남녀 간 고용률 격차가 5.0%포인트에 불과하다.

이들 국가의 여성 고용률이 높은 이유는 간단하다. 여성들이 가정에 소홀하지 않고도 취업이 가능한 일자리를 많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중규직'(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중간 개념)으로 불리는 유연근무제(또는 탄력근무제) 일자리가 그것이다.

한국에선 여성이 결혼하면 상당수가 일을 그만둬야 한다.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김태홍 일가정양립연구실장은 "인구의 절반인 여성의 우수한 노동력을 우리는 방치하고 있는 셈"이라며 "여성들만 제대로 일자리를 갖게 해도 성장률에 미치는 효과는 클 것"이라고 말했다.

◆발 빠른 선진국들

선진국들은 유연근무제를 이미 오래 전부터 활발히 도입하고 있다. 미국은 유연근무제 도입비율을 높인 결과 과거 50%를 밑돌던 여성 고용률이 70%대 가까이로 올라왔다. 네덜란드는 세제 혜택 등으로 시간제 근무를 지원한 결과 여성 고용률이 1980년 36.1%에서 지난해 73.5%로 두 배가량 뛰어올랐다. 유럽연합(EU)의 올해 여성 고용률은 평균 6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선진국은 중규직을 뒷받침할 제도를 촘촘하게 짰다. 스웨덴은 자녀가 8세 될 때까지 노동시간을 25% 단축할 수 있도록 법으로 규정했다. 영국은 '탄력근무 요청권에 관한 법'을 만들어 유연근무를 의무화했다. 네덜란드는 경영자들이 풀타임과 파트타임 노동자를 동등하게 대우하도록 '노동시간에 따른 차별금지법'을 만들었다.

◆중규직 20만명 늘리면

중규직 확대는 실업자 해소와 소득창출에 직접적으로 기여한다. 시간제 근무를 활발하게 시행 중인 고용노동부의 고객상담센터가 대표적 사례다. 이곳에 근무하는 130명 중 83명이 중규직이다. 1일 2교대로 근무하며 1인당 근무시간은 4시간반이고 임금은 월 평균 85만원으로 9급 공무원의 3분의 2 수준이다. 또 83명 중 24.1%인 20명이 55세 이상으로 고령자 고용창출 효과도 있다는 게 고용노동부 측 설명이다.

이를 단순 적용해 20만명의 중규직이 추가로 생긴다면 연간 2조400억원의 소득 창출 효과가 나타난다. 우리나라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0.2% 수준이다. 현재 여성 실업자 30만8000명과 비경제활동인구 중 취업가능자 29만5000명 등 총 60만명 중 3분의 1이 취업하면 고용률이 48.1%에서 2%포인트 상승하게 된다. .

김혜원 한국교원대학교 교수는 "OECD 국가의 사례를 봐도 여성 고용,특히 자녀가 있는 여성의 고용 증가는 경제성장으로 이어진다"며 "연금 급여나 사회보호체계 확립을 위해서도 국가의 중요한 정책 목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


◆ 중규직(中規職)

정규직이지만 시간제 근무와 재택근무,시차 출·퇴근제 등 유연근무제를 이용해 탄력적으로 근무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은 근무시간에 비례해 급여를 받으며 건강보험,각종 수당 지급 등은 정규직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