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사진)이 미국 경제가 미래에 대한 자신감 부족으로 회복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중국과 미국 간 벌어지고 있는 환율전쟁은 양국의 국내 정치 문제로 G20 정상회의에서도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11일(현지시간) 워싱턴의 개인 사무실에서 한국 언론과는 처음으로 한국경제신문과 단독 인터뷰를 갖고 "미국 정부가 금융위기 이후 기업과 금융시장의 룰을 자주 바꾸는 바람에 장기투자를 꺼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글로벌 시장의 최대 관심사로 떠오른 FRB의 추가 양적완화 정책에는 "금융위기 수습용으로 FRB가 시중에 대거 푼 자금도 기업과 가계로 흘러들어가지 않고 있다"며 사실상 반대 입장을 내놨다. 그는 대신 "지금 상황에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do nothing) 제3의 방안도 있다"며 역발상 정책을 제시했다.

그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정부가 개입해 해결할 수는 없다"며 "제3의 대안이 즉각적인 경기 회복을 가져다주지는 않겠지만 경제와 시장이 스스로 치유토록 해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과 중국 간 환율전쟁과 관련,그는 "아직 위험 수준에 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환율전쟁은 제로섬 게임이어서 상호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도 "환율 문제가 자국 내 정치적인 상황과 얽혀 있어 G20 정상회의에서도 의제로 오르겠지만 당사국들의 합의 도출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어 "금융위기가 FRB의 저금리 정책에서 초래되지는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전 세계 장기금리가 낮게 형성되면서 부동산 거품이 일어나 위기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금융위기를 막기 위해서는 금융사들이 충분한 자본을 축적하는 게 최선책이라고 말했다. 반면 "과도한 금융시장 규제와 감독은 대출 축소 등 부작용을 야기해 경제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한국에 대해 "자유시장경제 발전의 아주 중요한 모범사례"라고 높이 평가했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