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정해진 시간 안에 제한된 자원으로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할 수 있음을 여러 차례 증명했다. 이건 아주 유리한 조건이다. 특히 원전을 처음 짓는 국가들에 한국형 원전은 매우 매력적인 모델이 될 것이다. "

오스트리아 국제원자력기구(IAEA) 본부에서 지난 24일 만난 유리 A 소콜로프 사무차장(deputy director general · 사진)은 한국형 원전은 분명한 비교 우위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중립성을 지켜야 하는 입장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원전은 뛰어난 효율성에도 불구하고 건설 비용이 엄청나게 많이 들어간다는 단점이 있다. 개발도상국들이 한국형을 선호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으로 미국 104기,프랑스 59기,일본 53기 등 30개국에서 총 436기의 원전을 가동 중이다. 대부분 선진국에 집중돼 있다. 2000년대 이후엔 신흥국 중심으로 원전 수요가 늘고 있다.

작년 말 현재 건설이 진행 중인 원전을 전력 용량으로 환산하면 중국이 약 1만9000메가와트(㎿)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어 러시아,한국,인도가 뒤따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소콜로프 사무차장은 "선진국들도 기후변화협약에 가입하면서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하기 때문에 원자력 발전이 유일한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원전이 각광받는 이유는 효율성 덕분이다. 소콜로프 사무차장은 "1300㎿급 정도의 원전 1기면 100만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며 "풍력 발전으로 이만한 용량을 내려면 웬만한 도시 전체에 풍력 발전기를 세워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물론 원전이 화석 연료를 대체할 유일한 해결책은 아니다"며 "정부 입장에선 국민을 어떻게 설득하느냐가 어려운 문제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IAEA 본부가 있는 오스트리아만 해도 원전을 완공하고도 녹색당의 반대에 부딪쳐 시범 운영조차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은 원전을 현실성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판단,앞다퉈 신 · 증설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중단됐던 원전 시장이 부활하고 있다는 얘기다. 소콜로프 사무차장은 이 같은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이탈리아와 독일을 꼽았다.

그는 "독일의 경우 기존에 운영하던 원전을 점진적으로 모두 폐쇄하는 방안을 10년 전에 결정했었지만 이달 초 정부가 결정을 번복,원전 운영 기간을 10년 더 연장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탈리아도 체르노빌 사고의 여파로 모든 원전 계획을 중단했다가 올초 4기의 원전을 짓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발표했다.

세계 최대 원전 시장으로 꼽히는 중국만 해도 이미 17기를 건설 중이고,2020년까지 110기를 증설할 계획이다. 이렇게 해도 전체 전력 수요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5%에 불과하다. 31개주에서 104기의 원전을 가동 중인 미국 시장도 '대어(大魚)'로 꼽힌다. 대부분 1967~1990년 사이에 건설돼 업계에선 교체 수요가 상당할 것으로 보고 있다.

남미에서도 원전 수요가 늘고 있다. 브라질이 건설 중단된 앙그라 3호기 건설 재개를 추진 중이며,2030년까지 4기의 원전 추가 건설을 위한 타당성 조사를 진행 중이다. 아르헨티나 역시 아투차 2호기의 공사 재개를 결정했다. 중동에선 UAE의 원전 도입을 계기로 요르단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첫 원전 건설을 결정했고,카타르,오만,쿠웨이트도 신규 원전 건설을 검토 중이다.

아프리카의 경우 이집트가 이달 초 원전 도입을 공식 발표했다. 동남아시아에선 말레이시아를 비롯 태국,방글라데시,베트남,인도네시아,파키스탄,필리핀 등이 유력한 차세대 원전 운용국들이다.

빈(오스트리아)=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