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는 지금
관계부처 합동으로 지난 2일 발표한 '추석 민생과 서민물가 안정 방안'의 발표자는 원래 임종룡 기획재정부 제1차관이었다. 그러나 발표 하루 전에 갑자기 강호인 재정부 차관보로 바뀌었다.

정부가 야심차게 내놓는 대책인 만큼 장관 또는 제1차관이 직접 발표하는 게 격에 맞는 상황이었는데도 차관보가 나선 것은 대책 내용이 미흡해 장 · 차관이 발표하기가 껄끄러웠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이날 나온 대책은 '재탕삼탕'이 많아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재정부 관계자는 "채소 과일 등의 가격 급등으로 힘든 서민의 고충을 덜어줘야 한다는 부담이 컸지만 단기간에 묘수를 내놓기는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요즘 경제부처에서는 대통령이 연일 주문하는 '친서민'과 '공정사회'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서민과 중소기업 지원'으로 대변되는 공정사회 구현에 기조를 맞추려다 보니 기존 정책 방향과 상충되는 데다 뾰쪽한 방법을 찾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재정부가 최근 발표한 굵직한 정책들은 '재정건전성 확보'라는 정책 기조를 무색하게 한다. 지난달 말 발표된 세제개편안의 핵심은 기업 설비투자에 혜택을 주는 임시투자세액공제를 없애면서 남는 예산을 서민과 중소기업 지원으로 돌린 것이다. '부자 감세' 논란을 불러왔던 종합부동산세 폐지도 유보됐다.

지난 16일 나온 친서민 예산지원안 역시 구체적인 재원 확보 방안도 없이 파격적인 보육료와 학비 지원 등을 담았다. 재정부 관계자는 "한번 늘어나면 줄이기 힘든 경직성 복지 예산을 줄여야 한다는 공감대는 공정사회 구호에 완전히 묻혔다"며 "나중 일이 걱정은 되지만 일단 청와대 의중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공정거래위원회와 지식경제부는 대 · 중소기업 상생 방안을 마련하는 데 골머리를 앓고 있다. 웬만한 수준의 방안에 대해서는 청와대가 '약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도급법 적용 대상을 2~3차 협력업체까지 확대하는 등의 강력한 대책까지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지만 부작용이 신경쓰인다. 공정위 관계자는 "안으로 올린 것들이 잇달아 '퇴짜'를 맞으면서 발표가 계속 미뤄지고 있어 난감하다"고 하소연했다.

고용노동부를 중심으로 거의 모든 부처가 참여해 만들고 있는 청년실업 대책도 속을 태우기는 마찬가지다. 대학 구조조정 방안 등을 담는 것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지만 역시 반발과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고용부 관계자는 "추석 이후 발표할 계획이지만 예산 확보 등의 문제로 마지막까지 힘든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농림수산식품부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내년부터 쌀 조기 관세화(시장 개방)를 못하게 된 것도 역시 농민들의 반발을 감당하기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지금 이런 분위기에서 쌀 시장 개방을 정부 단독으로 추진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익명의 한 고위 관료는 "공정사회가 강조되면서 정책이 지나치게 친서민 · 중소기업과 복지로 치우치고 있다"며 "윤증현 재정부 장관이 공을 들이고 있는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영리병원) 허용 역시 상당 기간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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