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중국이 세계 농산물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당초 연말까지 곡물 수출을 금지하기로 했던 러시아가 이를 내년까지 연장하기로 한 가운데 중국은 최근 쌀 옥수수 등 주요 곡물을 평소의 수십배씩 사들이고 있다. 한쪽(러시아)은 곳간을 꼭꼭 닫아 걸고,다른 한쪽(중국)은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형국이다.

아프리카 빈국 모잠비크에서는 빵값 인상에 반발한 소요 사태가 발생,7명이 사망하는 등 2008년 식량 폭동이 재발할 조짐도 나타난다. "2년 전의 애그플레이션(agflation · 농산물 가격 급등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진다.

3일 로이터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최근 내각회의에서 "곡물 수출 금지 조치 철회는 내년 수확 결과가 나온 후에야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말까지로 예상됐던 금수 조치가 최소한 내년 중반까지는 이어질 것임을 내비친 것이다. 수출 금지 조치를 2012년까지 연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러시아는 미국 캐나다에 이어 세계 3위의 밀 수출국이다.

국제 밀가격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날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밀 12월 인도분은 장중 부셸당 7.178달러로 전날보다 0.63% 올랐다. 밀은 올 들어 60% 정도 올랐다. "아직은 재고가 충분하다"는 대다수 전문가들의 전망도 가격 상승을 막지 못했다.

밀뿐만 아니라 옥수수 설탕 커피는 물론 육류 등 다른 농산물과 축산물 값까지 급등했다. 쇠고기 값은 22개월 만에 최고치,양고기 가격도 37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최근 쌀 옥수수 등을 대거 사들이고 있는 중국의 '자국 우선' 농산물 수급 정책이 맞물린 결과라는 분석(파이낸셜타임스)이 나온다. 중국은 올 들어 지난 7월까지 전년 동기 대비 56배나 많은 총 28만2000t의 옥수수를 수입한 데 이어 최근에는 베트남으로부터 약 60만t의 쌀까지 추가로 들여올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비상대책회의를 소집했다. 주요 수출국과 수입국 관계자들을 불러 애그플레이션 가능성을 타진하고,해당 국가들의 의견 조율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아브돌레자 압바시안 FAO 국장은 "러시아의 금수 조치가 2년 지속되면 국제 곡물시장이 큰 혼란을 겪을 수 있다"며 "상황이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한편 모잠비크 수도 마푸토에서는 이날 빵값 30% 인상 등 고물가에 항의하는 시위가 이틀째 벌어져 경찰의 발포로 7명이 사망하고 288명이 다쳤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2008년에도 저개발 국가에서 식량가격 폭동이 발생,아이티와 마다가스카르 등에서는 정권이 교체되기도 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