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에 위치한 타이어 제조업체 A사는 2007년 매출 430억원,영업이익 30억원을 올린 알짜배기 중소기업이었다. 하지만 그해 통화옵션 상품인 키코(KIKO)에 가입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A사는 30억원가량의 손실을 냈고 이듬해 상품 가입 규모를 늘리면서 손실액은 168억원으로 불어났다. A사의 박모 전 회장은 "주거래은행이 중소기업인들을 모아 놓고 최우수 환율 상품이라며 홍보해 가입을 유도했고 막상 손실이 나자 2배수로 가입하도록 권유했다"고 토로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거래 대기업이 경영난에 부딪히면서 납품대금을 받지 못했고 이 회사는 지난해 워크아웃에 돌입했다. 박 회장은 회사를 떠나야 했고 지금은 주거래은행 출신 관리인이 이 회사의 경영을 맡아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키코 피해대책위원회는 13일 A사를 포함한 주요 피해 기업 27곳의 명단과 피해 사례를 공개했다. 이 중 피해액이 공개된 16개 기업의 총 손실액은 1조원이었다. 27개 기업 중 5곳이 부도를 맞았고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에 들어간 회사도 5곳이었다. 조선업체인 E사는 3000억원이 넘는 손실을 기록해 채권단에 경영권이 넘어갔다. 이와 별도로 포넷과 아구스는 상장폐지됐다.

물론 재기에 성공한 회사들도 있다. 헬멧 제조업체인 H사는 대출금을 출자전환하면서 지분 23%를 은행에 넘겨야 했지만 금융비용 부담이 줄어들면서 빠르게 실적이 나아졌다.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 프로그램인 패스트 트랙을 통해 자금을 지원받아 손실을 상당 부분 만회한 회사도 있었다.

조붕구 대책위원회 부위원장(코막중공업 사장)은 "키코 사태가 발생한 지 2년이 넘었지만 피해 기업들은 대출한도 축소,원자재 조달 난항,경영 악화,이자비용 급증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