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화성에 있는 코스맥스.작년에 1277억원의 매출을 올린 화장품 제조업체이지만 자체 브랜드는 하나도 없다. 전 세계 유명 화장품 회사들의 주문을 받아 물건을 공급하는 제조자 개발생산(ODM)에만 주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회사의 고객사 리스트를 보면 그저그런 '하청업체'라고 볼 수 없다. 이경수 회장은 "글로벌 화장품 회사 50곳,국내 화장품회사 100여곳 등이 우리 고객사"라며 "전 세계 고급 화장품 브랜드 중 상당수는 코스맥스가 만든 제품"이라고 강조했다.

처음엔 코스맥스도 화장품 판매사가 주문하는 대로 물건을 만들어 납품하는 '단순 하청'을 하는 회사에 불과했다. 그러나 하청을 하더라도 기술과 품질을 인정받는 ODM 사업을 하기 위해 1994년 사내 연구소를 세워 미세한 색감 차이,피부에 닿는 감각 등 품질 경쟁력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10여년간 연구 · 개발(R&D)에 주력한 결과 코스맥스는 2004년 세계 1위 화장품 회사인 프랑스 L사를 사로잡았다. 이 회장은 "당시 화장품 주문자 상표부착 생산(OEM)과 ODM 시장은 중 · 저가 제품은 중국 업체,고가 제품은 일본 업체가 도맡다시피 했다"며 "L사도 처음엔 일본 업체로부터 납품받다가 우리 제품의 품질을 보고 돌아섰다"고 말했다. 코스맥스는 L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미국 M사 · J사 등 글로벌 기업과 LG생활건강 더페이스샵 미샤 등 국내 기업을 고객으로 확보해 화장품 ODM 분야 강자로 올라섰다.

글로벌 분업의 시대.제품값이 싸거나 기술력이 좋은 회사엔 OEM,ODM 주문이 밀려든다. 한국 기업들의 생산경쟁력은 여기에서도 나타난다. 코스맥스처럼 ODM 사업만으로 메이저 화장품 회사를 거래선으로 확보하는 기업들이 많다.

경기도 의왕에 있는 핸드백업체 시몬느.이 회사는 코치,마이클 코어스,마크 제이콥스,버버리,도나카렌 등 내로라하는 25여개 명품 브랜드에 ODM 방식으로 핸드백을 수출한다. 전세계 백화점 · 명품 매장에서 팔리는 코치 제품의 25%,마이클 코어스 제품의 90%,마크 제이콥스 제품의 80%가 이 회사가 만든 제품이다. 시몬느의 경쟁력은 소재 · 디자인 개발부터 완제품 검수까지 모든 과정을 해내는 데 있다. 본사 직원 220명 가운데 디자인 인력만 80명.중국 인도네시아 등 해외에 4개 공장을 갖고 있지만 디자인만은 국내에서 하는 방식으로 관련 분야 최고의 ODM 기업으로 대접받고 있다.

OEM,ODM 관계는 아니지만 글로벌 기업 본사로부터 한국 법인이 독보적인 생산성을 인정받는 사례도 있다. 미국 GM그룹의 한국 법인인 GM대우가 대표적이다. 자동차 업계에서 경차 생산기지는 생산 원가를 대폭 낮추기 위해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임금 수준이 낮은 나라에 두는 게 보통이지만 GM그룹은 GM대우에 경차 생산을 맡겼다. 전 세계에 공급되는 GM의 '시보레' 브랜드를 단 경차는 모두 한국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GM대우의 비결은 생산성에 있다. 20년간 티코 마티즈 등 경차 생산성을 높이는 다양한 방법을 연구,다른 국가에서 따라오기 힘든 수준의 경쟁력을 쌓았다는 설명이다.

회사 관계자는 "한국에서 수출한 반조립 수출품(CKD)을 완제품으로 조립하는 경차공장을 해외에 지을 때는 GM대우 인력만 파견한다"며 "GM그룹에서 경차 생산과 관련한 모든 사항을 GM대우가 챙기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태명/임기훈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