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UP '코리아 생산기술'] (1) LG디스플레이의 '맥스캐파'…설비 투자없이 생산성 30% 높여
2007년 1월2일.LG디스플레이의 시무식 분위기는 엉망이었다. 전년 영업손실이 8790억원에 달한 데다 LCD(액정표시장치) 패널 시장의 상황도 암울했기 때문이다.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생존을 위해 생산성을 높여야 하지만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았다. 재원도 부족했지만 추가 투자를 하면 손실 규모가 더 커질 것이라는 게 당시 전문가들의 중론이었다.
"추가지원 없이 생산성을 높여라"
이해 취임한 권영수 사장은 '맥스캐파(Max Capacity · 극한도전) 캠페인'을 지시했다. 똑같은 설비와 장비로 생산성을 높이라는 다소 황당한 주문이었다. 당시 권 사장은 "과거처럼 새로운 수요가 생기면 공장을 지어 대응하던 시절은 끝났다"면서 "이제부터는 기존 생산 시설의 효율 극대화를 통해 신규 수요에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제조업엔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자주 언급했다는 '해봤어' 도전정신이 배어 있다.

"추가지원 없이 생산성을 높여라"

"전 생산공정을 낱낱이 살펴보고 세부 공정별 처리시간을 어떻게 줄일지 고민했습니다. 감광 도포액을 얇게 바른다든지,빛 감도가 뛰어난 재료를 적용한다든지,코팅 처리를 보다 빨리 한다든지,로봇의 동작속도를 올린다든지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다 찾아냈습니다. " (박문기 공정개발3팀장)

궁하면 통한다는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LG디스플레이의 연구진은 고감도 감광액을 개발하는 등 다양한 해결책을 순차적으로 제시했다. 이 회사는 2007년 생산성을 30%가량 높였다. 실적은 보다 빨리 움직였다.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2분기 15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흑자전환했다. 맥스캐파 캠페인의 성과에 고무된 LG디스플레이는 같은 해 10월 3조1000억원을 들여 47인치 TV용 패널 8장을 한번에 찍어낼 수 있는 8세대 LCD 패널 생산 라인을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8세대 생산라인은 LG디스플레이가 세계 최대 LCD 패널업체로 발돋움하는 밑거름이 됐다.

김동한 무인화기술팀 차장은 "2007년부터 시작된 맥스캐파 캠페인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라며 "LCD 유리기판에 빛을 쪼여 회로를 만드는 노광 공정을 다섯 단계에서 세 단계로 줄이는 등 꾸준한 성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08년 26% 등 매년 20~30%의 생산성을 지속적으로 높인 덕에 대만 경쟁업체들의 두 배 수준에 달하는 영업이익률을 꾸준히 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파워UP '코리아 생산기술'] (1) LG디스플레이의 '맥스캐파'…설비 투자없이 생산성 30% 높여
◆ 3개월 만에 100% 공장 가동

"LCD 패널이 더 필요합니다. 공급량 좀 늘려주세요. " 2009년 3월 8세대 라인이 본격적으로 가동을 시작했을 무렵 전 세계 LCD 패널 시장은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LCD TV 시장 수요가 예상보다 빨리 늘어나면서 완제품 TV 제조업체들의 주문이 잇따랐다. LG디스플레이 경영진은 생산량을 확대할 수 있는 방법은 8세대 라인뿐이라고 판단,새 생산라인의 램프업(생산량을 100%까지 끌어올리는 과정)을 가급적 빨리 끝낼 것을 현장에 지시했다.

이 회사 연구원들은 맥스캐파 캠페인에서 얻은 노하우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현장 직원과 연구원들이 함께 참여하는 생산기술센터가 설비를 들이는 과정에서부터 손실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도출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통상 6개월 이상 소요되는 램프업을 3개월 만에 마쳤으며 수율(전체 생산품 중 합격품 비율)도 90% 이상의 안정적인 수준으로 높였다. 빠른 램프업은 실적으로 이어졌다. LG디스플레이의 2009년 2분기 매출은 4조8905억원으로 분기 최대기록을 경신했다. LCD 호황의 과실을 극대화한 것이다.

강경규 생산기술센터 기획팀 과장은 "예전에는 새로운 라인을 가동할 때 수율이 20~30%에서 계단식으로 올라가지만 사전 준비만 철저히 하면 양산 즉시 90% 수준을 맞출 수 있다"며 "8세대 첫 번째 라인에서 얻은 노하우를 올해와 내년에 순차적으로 가동을 시작하는 두 번째,세 번째 라인에도 적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외국에서 들여온 장비도 개조

하이닉스반도체도 경쟁사보다 적은 돈을 투입해 최고의 생산성을 낸다는 점에서 LG디스플레이 못지않은 역량을 갖추고 있다. 2008년 반도체 업계는 최악의 상황에 빠졌다. 2007년까지 계속된 증설 경쟁으로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면서 D램 가격이 폭락한 탓이다. 여기에 글로벌 금융위기의 광풍까지 불어닥쳤다. 상황이 바뀐 것은 지난해 초 세계 5위의 메모리반도체 회사인 독일 키몬다가 파산하면서부터다. 반도체 업체들은 반도체 공급량이 줄고 경기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판단,이 시기부터 다시 증산에 나섰다.

하이닉스의 상황은 난감했다. 2007년 4분기부터 적자가 누적돼 증산을 위해 장비를 새로 살 여력이 없었던 것.이종수 제조혁신그룹장은 "돈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공장이 비좁아 장비를 사더라도 놓을 공간이 없었다"며 "기존 장비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방법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추가 투자 없이 생산성을 높이라는 지시는 노광 장비를 담당했던 '포토ArF 제조기술팀'에도 떨어졌다. 당시 대부분의 메모리회사들은 네덜란드 ASML사의 노광 장비를 사용했다. 이 장비의 대당 가격은 800억~1000억원.권원택 상무(포토ArF 제조기술팀장)는 "돈이 없던 때라 한 대 사기에도 벅찼다"며 "그래서 우리 손으로 직접 장비를 개조해보자고 달려들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권 상무를 주축으로 한 포토ArF 제조기술팀은 ASML장비를 속속들이 파헤쳤다. 그 결과 회로를 찍는 렌즈의 시야각을 넓혀도 품질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점을 발견했다.

권 상무는 "ASML 장비 렌즈는 웨이퍼 한 장당 50번을 찍어야 모든 반도체 위에 회로를 그릴 수 있게 설계됐는데 렌즈 폭을 넓히는 방법으로 10번만 찍도록 개조했다"며 "경쟁사가 하루에 3000장을 찍을 수 있는 데 비해 우리는 일부 라인장비 개조로 100장을 더 만들 수 있어 월 기준으로는 2만장을 더 생산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송형석/심은지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