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강모씨(33)는 6년 동안 다니던 회사를 지난 5월 그만뒀다. 미국 대학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따보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인력 감원 차원에서 해고된 것으로 해달라"고 말했다. 회사에서도 당연히 그렇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며 권고해직 사유서를 써줬다. 강씨는 "덕분에 실업 급여를 월 100만원 가까이 6개월 동안 받게 됐다"며 "당분간 이 돈을 받으며 좀 쉴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음 달 미국으로 보름간 여행을 가기 위해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2. B사 대표 박모씨는 지난해 친인척 명의로 의류업,화장품소매업 등 무려 59개의 사업자 등록을 했다. 그리고 가족과 지인들을 동원해 일을 한 것처럼 거짓 서류를 꾸몄다. 이후 고용보험에 소급 가입시킨 후 폐업시키는 수법으로 수천만원의 실업 급여를 부정 수급하다 올해 초 고용지원센터 부정수급전담팀 직원에게 덜미를 잡혔다.

◆실업도 '괜찮은 직업'

지난해 고용보험기금에서 실업 급여를 받은 사람은 130만명이다. 회사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노동자들에게만 실업 급여를 주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해고'를 당한 사람인지,아니면 자발적으로 회사를 떠나면서도 서류상으로만 '해고'서류를 내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대기업들은 직원을 해고하는 것이 매우 어렵고,중소기업들은 구인난으로 직원을 붙잡기에 급급한 현실을 감안하면 1년에 130만명이 해고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상반기에만 1만2457명의 실업급여 부정 수급을 적발했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지적이다.

방하남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실업 급여를 받는 130만명을 일일이 감시할 수 없어 부정 수급 사실을 적발하기가 쉽지 않다"며 "고용유지지원금도 회사와 근로자가 담합하면 적발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직원이 스스로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결정해 놓고도 실업 급여를 받기 위해 해고 서류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면 거절하기가 어렵다"며 "해고 서류를 원하면 다 들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구직활동에 소극적

실업 급여를 받게 된 사람들은 구직 서류를 형식적으로 제출할 뿐 실제로는 구직활동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루 4만원 한도 내에서 종전 직장에서 받던 통상임금의 50%까지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짧게는 90일,길게는 240일까지 실업 급여를 받으면서 취업을 늦춘다는 얘기다. 지난해 실업 급여를 받은 사람들의 수급 기간은 평균 114일이었다.

유길상 한국기술대 교수는 "실업 급여를 받는 동안 취업 활동을 벌이지 않는 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실업 급여를 받는 기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야 취업률이 급증하는 현상이 그 증거라는 것이다. 유 교수는 "때문에 실업급여 지급 기간이 3년이었던 독일도 최대 18개월로 줄였고 덴마크는 9년에서 2년으로 기간을 단축한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 국가들이 상담사가 추천한 세 곳의 일자리를 거부하면 실업급여 지원을 중단하는 등 구직활동을 적극적으로 벌이도록 유도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형식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입사지원서를 제출했다는 증명서만 내면 급여지급 자격이 유지되기 때문에 입사 의지가 없는 구직활동이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많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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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보험기금은 4년째 적자

실업 급여를 부당하게 받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 기간도 길어지면서 고용보험기금 운영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1995년 7월 도입된 고용보험은 올해 연간 1조원 적자가 예상되고 있다. 수입은 4조8000억원인 반면 지출 예상액이 5조7900억원으로 훨씬 많기 때문이다. 4년째 적자 행진이다.

고용보험 적립액은 2006년 9조3000억원에서 2008년 8조2000억원,지난해 6조2600억원으로 줄었고 올해는 5조3000억원으로 감소할 전망이다.

2008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과거 6년 동안의 고용보험 적용률을 감안해 경제활동 참가자 수 대비 고용보험 적용대상자 수가 36% 수준을 유지한다고 가정했을 때 고용보험 적립액은 2015년 다 소진될 것으로 예상됐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2035년 4조원의 누적 적자를 기록한 후 2050년에는 적자폭이 12조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사용주와 노동자가 각각 임금총액의 0.45%를 내는 보험료를 인상해야 하는 상황이 조만간 닥칠 것으로 예상된다.

◆일용직 비정규직은 사각지대

고용이 불안정하고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비정규직과 일용직 근로자들은 고용보험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고용부에 따르면 정규직은 전국 평균 94%가 고용보험에 가입한 반면 비정규직은 40%만 가입돼 있다. 유경준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비정규직의 경우 6개월 미만의 단기 계약직이 대부분이어서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데다 실업 급여를 받더라도 최저임금의 90%를 받는 수급자가 많다"고 지적했다.

단기 일용직 근로자 현실은 더욱 열악하다. 노무법인 대화의 류순건 노무사는 "단기 일용직 근로자는 1년간 250일 이상 근무를 해야 피보험자격이 주어진다"며 "하지만 실제 근무가능일수는 여름 장마기간과 동절기 휴일 등을 감안하면 200여일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고용보험은 노조의 강력한 보호를 받고 있는 정규직의 '퇴직금'일 뿐 일용직 등이 갑작스럽게 해고를 당하는 데 대비하는 기능은 취약하다는 얘기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