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중견 간부인 최모씨(59)는 노안으로 3년 전부터 돋보기를 써왔다. 그런데 업무를 위해 배운 골프 실력이 작년 초부터 점차 줄어 자존심이 상했다. 골프가 중요한 노년 계획 중 하나가 될 만큼 골프에 심취한 그에겐 낙심이 컸다. 주된 이유는 홀컵을 향한 마지막 퍼트의 적중률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시야가 흐릿해지면서 퍼팅 때 집중력이 저하됐고 실수를 범했다. 즐겁게 시작했다가 스트레스를 받고 귀가하는 일들이 잦아졌다. 안과를 찾아 진단을 받아보니 전형적인 노안과 백내장이 겹친 상태였다. 거스를 수 세월 탓인가. 노안으로 40~80㎝ 떨어진 거리가 잘 보이지 않게 되고,백내장으로 눈에 백태가 낀 것처럼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이 때문에 장시간 서류를 보거나 운동하면 피로감이 더욱 가중됐다.

결국 그는 석달 전 노안과 백내장을 동시에 교정하는 조절성 인공수정체 렌즈를 삽입하는 수술을 받았다. 1주일이 지나 시력개선 효과가 나타났으며,1개월 후엔 가깝고 먼 거리가 다 잘 보이고 팔이 닿을 수 있는 위치의 사물들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사물이 또렷하게 보이니 머리 속까지 맑아지고 다시 젊어진 느낌이 들었다. 아주 작은 변화지만 돋보기에 의존하지 않아도 돼 자유롭고 편리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어느 누구도 나이들어 찾아오는 노안과 백내장을 피해갈 수 없다. 사람의 눈에는 렌즈 역할을 하는 수정체가 있어 두꺼워졌다 얇아졌다 하면서 초점을 맞춘다. 노안이 오면 점차 수정체와 수정체의 두께를 조절하는 근육의 탄성이 떨어져 거리조절 능력이 저하된다. 이 때문에 가까운 거리의 사물은 흐릿해지고 오히려 먼 거리가 선명해진다.

여기에 백내장으로 수정체가 혼탁해지면 빛이 제대로 투과되지 않아 시야가 흐려진다. 이를 방치하면 실명에 이르게 된다. 노안과 백내장은 바깥 활동은 물론 신문을 보거나 휴대폰 전화를 거는 간단한 일상도 불편하게 만든다.

백내장은 개인차에 따라 발생시기가 달라지지만 '2008년 국민건강영양조사'결과에 따르면 40세 이상 국민 10명 중 4명이 백내장 진단을 받았을 정도로 흔하다. 현재 주된 백내장 치료는 낡고 혼탁해진 수정체를 초음파유화흡입기로 제거한 뒤 새 인공수정체를 삽입하는 시술이다. 그런데 건강보험 혜택을 받는 일반적인 인공수정체는 원거리를 보는데에만 초점을 맞춰주기 때문에 가까운 거리는 돋보기 안경을 써야 한다. 즉 노안 증상을 바로잡을 수 없다.

이에 따라 노안까지 개선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인공수정체가 등장하고 있다. 널리 알려진 게 미국 알콘사의 다초점 인공수정체 렌즈인 '레스토'다. 렌즈 표면에 12개의 동심원을 머리카락 두께의 50분의 1 간격으로 계단식으로 정교하게 깎아 빛의 굴절 현상을 이용해 근거리 원거리를 다 같이 볼 수 있도록 제작한 제품이다. 하지만 이 렌즈는 다초점이기 때문에 근거리 원거리를 자주 번갈아볼 경우 어지러울 수 있다. 또 약간의 빛번짐,야간의 눈부심,중간거리(40~80㎝)에 맺히는 상의 선명도 떨어짐 등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런 레스토의 단점을 현격하게 개선시킨 인공수정체가 세계적인 안과 전문기업인 바슈롬싸우스아시아의 '크리스탈렌즈 HD'다. 크리스탈렌즈 HD는 2008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유일한 조절성 인공수정체다. 건강한 사람의 수정체는 가까운 곳을 볼 때엔 수정체 상하 양끝에 붙어있는 모양근이 수축해 수정체가 두꺼워지고,먼 곳을 볼 때엔 모양근이 이완돼 수정체가 얇아지게 된다. 크리스탈렌즈 HD는 원형의 수정체 양끝에 경첩처럼 휘어지는 부분이 달려있어 수술할 때 모양근에 연결된다. 가까운 곳을 보려고 눈에 힘을 주면 렌즈가 동공 방향으로 전진하고,먼 곳을 보려고 눈에 힘을 주면 렌즈가 망막 방향으로 후진해 자연스럽게 초점이 조절된다. 초점이 맺히는 거리에 따라 인공수정체 렌즈가 전 · 후방으로 움직이도록 설계돼 가까운 거리(40㎝ 이하)부터 중간거리(40~80㎝),먼 거리(수m 이상)까지 두루 잘 볼 수 있게 해준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10월 중순께 출시돼 양안에 600만~800만원의 비용으로 비보험으로 일선 안과에서 시술되고 있다.

FDA 승인을 받기 위해 2008년 미국에서 백내장 환자 123안(眼)을 대상으로 크리스탈렌즈 HD를 삽입한 임상시험 결과 환자의 80%가 0.6 이상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시력이 개선됐다. 김효명 고려대 안암병원 교수,차흥원 울산대 서울아산병원 교수,김태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교수,정의상 성균관대 서울삼성병원 교수,최철영 강북삼성병원 교수 등 국내 5개 대학병원 안과 전문의가 50인을 대상으로 시행한 국내 임상시험에서도 중간거리에서 수술 전 0.2 이하였던 시력이 수술한 지 2개월 후 평균 0.8까지 회복됐고 원거리 시력은 수술 전 0.4 이하에서 수술 2개월 후 0.9까지 높아졌다. 백내장 및 노안 치료 효과가 입증됐고 야간 눈부심이나 빛 번짐과 같은 부작용도 개선됐다.

차흥원 교수는 "크리스탈렌즈 HD는 사람의 수정체와 거의 비슷하게 초점이 맺히는 거리를 조절할 수 있다"며 "같은 사물을 바라볼 때 여러 개의 초점이 맺히는 다초점 인공 수정체와 달리 하나의 초점으로 보다 선명한 시야를 제공하기 때문에 빛 번짐이나 야간 눈부심과 같은 부작용이 적다"고 말했다. 이동호 압구정연세안과 원장은 "중간거리를 일명 '생활시력'이라고 부르는데 휴대폰 문자보내기,요리,운전,컴퓨터작업,골프나 탁구 등과 같은 활동에 중요하다"며 "크리스탈렌즈 HD는 생활시력 교정효과가 높아 더욱 선명한 시야로 일상생활을 가능하게 한다"고 강조했다.

조절성 인공수정체 시술을 받으려면 우선 망막 상태가 건강해야 한다. 만일 라식 수술을 받았거나 백내장 외에 망막질환 혹은 시신경 질환 등이 있을 경우에는 효과를 제대로 볼 수 없다. 최씨처럼 평소 야외활동을 좋아하고 대인관계가 많은 외향적인 사람의 성격이라면 더욱 조절성 인공수정체가 적합하다. 그러나 가까운 시력은 레스토렌즈보다 다소 덜 선명한 느낌을 주므로 자기의 생활패턴을 고려해봐야 한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