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10월29일 주가 폭락으로 시작된 미국의 불황이 대공황으로 확산한 이유는 무엇일까. 손성원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경제학과 석좌교수는 "1930년대 후반에 때 이른 긴축으로 미국 경제가 더블 딥(일시 회복 뒤 침체)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미국 경제는 1929년부터 1933년까지 국민총생산(GNP) 기준으로 경제 규모가 27% 감소했으나 1934년부터 1936년까지 플러스 성장을 이룩하며 상당폭 만회했다. 경제가 회복세에 들어갔다고 판단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1937년부터 공공지출을 줄이기 시작했으며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도 지급준비율을 인상하는 등 '출구 전략(Exit Strategy)'을 시행했다.

하지만 회복세가 미약한 상태에서 시작된 출구 전략은 1938년 경제를 다시 침체로 밀어넣었다. 미국 경제가 1929년 주가 폭락 이전의 상황을 회복한 것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인 1941년이었다.


◆경기 논쟁 점화

한국은행이 지난 9일 정책금리(기준금리)를 연 2.0%에서 2.25%로 인상하면서 경기 둔화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한은의 금리 인상이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는 우리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냐 말 것이냐를 두고 두 편으로 나뉘고 있는 것이다.

한은은 '별 영향 없다'는 쪽이다. 한은은 국내 경제가 하반기에 사실상 정상 궤도에 올라선다는 점을 강조하며 금리 인상이 필연적이었다고 설명한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하반기 중 국내총생산(GDP) 갭이 플러스로 돌아설 것"이라고 말했다.

GDP 갭이란 실제 GDP와 잠재 GDP 간 차이로 이 수치가 마이너스이면 불황 국면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수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마이너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은 실무진은 조심스럽지만 2분기에 GDP 갭이 플러스로 돌아섰을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비해 LG경제연구원과 삼성경제연구소는 금리 인상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가파르게 추가 인상에 나서면 회복하는 경기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LG경제연구원은 그 이유로 GDP 갭이 플러스로 전환하는 시점이 내년 말께로 예상되는 등 국내 경제가 아직 정상 국면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점을 들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하반기 성장 속도가 낮아진다는 점을 꼽고 있다.

두 연구소는 다만 더블 딥 가능성은 한은과 마찬가지로 매우 낮다고 평가하고 있다.

◆선진국 재정 축소가 관건

하반기 이후 경제 흐름에 대해 한은은 '견조'라고 표현하고 있다. 반면 삼성 LG 등 민간 연구소들은 '둔화'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민간 연구소들이 상당히 신중하게 접근하는 가장 큰 이유는 유럽 각국이 재정 긴축에 들어간 여파가 하반기부터 나타날 것이라는 관측 때문이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유럽 국가들이 1분기에 꽤 큰 폭의 회복세를 나타냈지만 재정 긴축이 본격화하면 경기가 장기 부진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LG는 이 때문에 올해 우리 경제 성장률을 한은(5.9%)보다 낮은 5.5%(상반기 7.1%,하반기 4.2%)로 잡았다.

민간 연구소들은 유럽의 부진이 한국의 수출에 타격을 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유럽이 한국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에 육박한다. 유럽은 중국 다음으로 한국 상품을 많이 사들이고 있다. 유럽의 부진이 글로벌 경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면 반도체와 정보기술(IT) 부품 등이 주력인 우리 수출 상품들이 상반기처럼 팔려 나가기가 쉽지 않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민간 연구소들은 이 외에 △미국이 부동산과 고용시장의 부진으로 소비가 늘지 않고 △중국은 물가 상승 문제로 긴축을 펼 수밖에 없으며 △한국은 기준금리 인상으로 환율이 하락하고 있다는 점 등도 불안 요인으로 꼽았다.

◆국내 상황 평가도 엇갈려

삼성경제연구소의 올해 국내 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상반기 7.0%,하반기 3.4%다. 한은의 상반기 7.4%,하반기 4.5%와 비교하면 하반기 격차가 훨씬 크다.

황인성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자동차와 반도체 경기가 하반기에 둔화할 것인지 여부에서 의견 차이가 크다"고 설명했다. 자동차는 세제 혜택과 신차 효과 등으로 상반기엔 판매가 예상외로 급증했지만 하반기에도 이런 추세를 이어가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반도체 역시 경기 사이클상 지금이 고점이며 점차 꺾일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정부 기여도 측면에 대한 평가에서도 차이가 난다. 한은은 민간의 회복세가 정부 지출 축소를 상쇄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민간 연구소들은 예산이 상반기 163조원에서 하반기 108조원으로 줄어드는 것을 민간이 모두 메우기는 힘들다고 보고 있다.

민간 연구소들은 한은이 국내외 경제상황을 종합적으로 봐가며 추가 금리 인상을 최소한의 폭(0.25%포인트)으로 점진적으로 실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권고하고 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