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와 남미의 신흥국들과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들이 '출구전략' 실행에서 차별화(디커플링)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경기 회복 속도가 상대적으로 빠른 신흥국들은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잇따라 기준금리를 올리며 출구전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반면 선진국들은 재정적자 문제와 '더블딥(경기 회복 후 다시 침체)' 우려에 발목이 잡혀 금융위기 당시 저금리 수준을 유지한 채 출구 앞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중앙은행은 8일 기준금리를 연 2.5%에서 2.75%로 0.25%포인트 올렸다. 올 들어 세 번째 인상이다. 세계경제 회복세가 둔화되고 있지만 말레이시아 경제가 금리인상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강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 경제는 지난 1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10.1% 성장했으며 2분기에도 양호한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다만 중앙은행이 2.75%의 금리가 '적절한' 수준이라고 밝혀 추가 금리인상엔 나서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인도 중앙은행(RBI)도 지난 2일 올 들어 세 번째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RBI는 기준금리 역할을 하는 재할인금리와 역재할인금리를 각각 0.25%포인트 올렸다. 이에 따라 재할인금리는 5.5%,역재할인금리는 4%가 됐다. 당시 금리인상은 오는 27일의 정례 통화정책회의를 앞두고 긴급하게 이뤄진 것이다. 그만큼 치솟는 물가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본 것이다. 인도의 대표적 물가지표인 도매물가지수는 지난 5월 전년 동기 대비 10.16% 급등했다.

대만 중앙은행도 지난달 사상 최저 수준(1.25%)이던 기준금리를 1.375%로 0.125%포인트 인상했다. 오는 14일 통화정책회의를 갖는 태국도 기준금리 인상을 고려 중이다. 중국은 부동산 긴축정책을 펴는 등 사실상 '긴축' 모드에 들어갔으나 기준금리 인상을 통한 본격적인 출구전략엔 아직 나서지 않고 있다. 그러나 투자은행들은 연내 금리인상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남미 국가들도 금리 올리기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페루 중앙은행은 8일 기준금리를 1.75%에서 2%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3개월 연속 인상이다. 브라질 중앙은행은 지난달 10일 기준금리를 9.5%에서 10.25%로 0.75%포인트 올렸다. 올 들어 두 번째였다. 브라질의 1분기 경제성장률은 9%로 1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뉴질랜드도 지난달 기준 금리를 2.5%에서 2.75%로 0.25%포인트 높였다. 지난해 10월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가장 먼저 금리인상을 단행한 호주는 지난 5월까지 총 여섯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인상한 이후 최근 2개월간은 연 4.5%로 동결하고 있다.

반면 미 · 일,유럽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유럽발 재정위기 악재 등으로 금융위기 당시 실시했던 초저금리 정책을 상당 기간 유지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인플레이션보다 디플레이션 우려가 더 크다는 지적까지 나오는 등 경기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해 5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해 출범 이후 10년 만의 최저 수준인 1%까지 낮춘 이후 이달까지 14개월째 금리를 동결했다. 영국중앙은행(BOE)도 지난해 3월 0.5%까지 떨어뜨린 기준금리를 16개월째 유지하고 있다.

미국도 연내 금리인상은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지난달 23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금리동결을 결정한 후 '상당 기간' 저금리 기조를 유지할 뜻을 재확인했다. 이에 따라 지난 4월까지만 해도 연내 금리인상을 예상했던 전문가들이 FOMC의 기준금리 인상시기를 최소한 내년으로 늦춰잡고 있다. 디플레이션 위험이 여전한 일본 역시 0.1%의 초저금리를 당분간 유지할 것으로 보이지만 신흥국들의 연쇄인상이 새로운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

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