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경기도 용인시 마북동 현대모비스 기술연구소.베이지색 작업복을 입은 연구원들이 둥근 홈이 파진 쇳덩어리를 들고 나타났다. 이 부품은 오는 10월 미국 시장에 출시하는 쏘나타 하이브리드의 '심장' 역할을 할 모터.완성차에 장착했을 때 결함이 없는지 마지막으로 점검하는 중이었다.

"도요타,혼다의 하이브리드카 못지 않은 성능을 갖추고 있습니다. " 친환경 자동차용 부품 개발을 총괄하는 권중록 이사는 "쏘나타 하이브리드가 큰 일을 낼 것"이라며 이같이 자신했다. 그는 "인버터(직류를 교류로 변환시키는 부품),모터 등 하이브리드 자동차용 핵심 구동부품 대부분을 모비스가 독자적으로 제작했다"며 "양산 노하우 면에서는 출시 시점이 빨랐던 일본 업체들에 뒤질지 모르지만 자동차의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기술의 수준은 엇비슷하거나 오히려 우수하다"고 말했다.

◆현대모비스는 변신 중

용인 기술연구소는 현대모비스의 5~10년 후 모습을 점쳐볼 수 있는 곳이다. 하이브리드카,전기자동차,수소연료전지차 등 차세대 자동차에 들어갈 핵심 부품을 모두 이곳에서 개발하고 있다. 기술연구소 관계자들은 자동차업계에 불고 있는 친환경 바람이 새로운 도약을 위한 계기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기술상의 우위를 증명,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을 새로운 고객으로 끌어들인다는 복안이다.

현대모비스의 이 같은 전략은 지난 3월 서울 역삼동 현대해상화재빌딩에서 열린 제33회 정기주주총회에서 구체화됐다. 정석수 부회장이 제시한 비전은 '기술 모비스'였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에 필요한 부품을 단순 제조하는 단계에서 한발 나아가 독일 보쉬나 일본 덴소와 같은 기술 기반의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게 비전의 골자였다.

구체적인 로드맵도 확정했다. 2015년까지 연구 · 개발(R&D)에 1조2000억원을 투자,핵심 부품 매출 비중을 현재 30% 수준에서 50% 선까지 끌어올리기로 했다. R&D의 중심축을 양산기술에서 친환경차를 중심으로 한 선행기술로 바꾸기 위해 연구소 조직 개편도 준비 중이다. 양산기술과 선행기술 연구소를 별도로 운영하는 방법으로 R&D의 효율성을 높여 나갈 계획이다.

정 부회장은 "작년 2000억원 수준이던 R&D 예산을 올해 3500억원 선으로 늘렸다"며 "자동차 전장화 추세에 맞춰 전기 · 전자 분야에 집중적인 투자를 단행하겠다"고 말했다.

◆탐나는 사업 포트폴리오

증권가에서 현대모비스는 '골든 트라이앵글'로 통한다. 기업의 가치를 측정하는 기준인 수익성과 성장성,안정성 등 세 가지 측면에서 모두 높은 점수를 얻고 있어서다. 20만원을 넘나드는 주가가 현대모비스의 위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 회사의 주가는 지난 1년 새 두 배가량 올랐다. 시가총액은 19조7000억원 선.유가증권시장 상장 기업 중 8위의 성적이다.

현대모비스는 지난해 10조6330억원의 매출과 1조4223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영업이익률이 13%를 넘는다. 잘해야 5%가 고작인 다른 부품업체들과 대비되는 성적표다. 여러 부품을 조립한 덩어리인 모듈 등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군을 다양하게 갖추고 있어 영업이익률이 높게 나온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성장속도도 가파르다. 지난해에는 자동차 전장품 전문업체인 현대오토넷을 합병했으며 LG화학과의 합작을 통해 친환경 자동차용 전지업체인 HL그린파워를 설립했다. 해외 생산기지도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경영에 발맞춰 차근차근 늘려 나가고 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생산기지가 들어서면 현대모비스의 모듈 공장이 함께 만들어지는 구조다. 현재 현대모비스가 보유하고 있는 해외 법인은 13곳에 달한다.

현대모비스는 자동차 경기 부침의 영향을 덜 받으면서 돈을 버는 기업이다. 완성차 판매가 활발한 호경기에는 부품 B2B(기업 간 거래) 매출이 껑충 뛴다. 불경기에는 새 차를 사는 대신 기존 차량을 정비하려는 고객들이 증가한다. 정비소에 공급하는 애프터마켓용 부품 수요가 B2B 손실을 메워준다.

이 회사의 영업이익은 2007년 8245억원,2008년 1조1866억원,지난해 1조4223억원 등으로 해마다 큰 폭으로 늘고 있다.

◆현대차 매출 의존도 확 낮춘다

현대모비스 연구진은 지난달 7일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시 포드 기술연구소를 찾았다. 최근 개발한 신제품을 소개하기 위해 '찾아가는 설명회'를 기획한 것.이 자리에는 포드 R&D 담당자 400여명이 참석했다. 포드 임직원들은 현대모비스가 만든 제동장치의 핵심 부품인 캘리퍼(calliper),부스터(booster) 등에 관심을 보였다. 삼성LED와 공동으로 개발 중인 LED(발광다이오드) 전조등도 인기를 끌었다.

현대모비스 직원들이 해외에서 발품을 팔고 있는 것은 90%에 달하는 현대 · 기아차그룹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다. '2020년 글로벌 톱5 자동차 부품업체'라는 중장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외부 거래처를 더 늘려야 한다고 본 것이다. 현대모비스의 벤치마킹 대상인 일본 덴소는 도요타 의존도가 50% 내외에 불과하다.

현대모비스의 '방문 세일즈'는 지난해부터 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5곳의 해외 완성차 업체에 부품을 판매하는 등 풍성한 수확을 거둔 것.2002년부터 현대모비스와 인연을 맺어온 크라이슬러는 지난해 20억달러어치의 섀시 모듈을 사갔다. BMW와는 8000만달러 상당의 후미등 공급계약을 맺었다. 이준형 해외사업본부장(전무)은 "현대모비스 부품을 써본 업체들이 재구매 의사를 밝히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중장기적으로 전체 매출에서 해외 완성차 메이커에 대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을 30%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용인=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