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폭스바겐 경영진이 다음주 타이베이의 칭화산업구를 둘러본다. "자동차 생산 공장을 짓기 위한 방문"(우둔이 대만행정원장)이다. 중국의 토종기업인 치루이자동차도 대만에 공장을 짓는 방안을 현재 검토 중이다.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이 발효되면 중국에서 가져오는 자동차부품에 관세가 붙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대만을 교두보로 한 글로벌 전략을 수립한 것이다.

전복시장 세계 1위 업체인 싱가포르 오셔너스는 대만을 중국 진출의 전진기지로 삼기로 하고 타이베이에 법인을 설립한다고 싱가포르 타임스가 28일 보도했다. 대만의 푸방은행 HNCB 투디은행 등도 중국 사무소 설립을 신청했다. 융칭 등 부동산개발회사도 파트너십을 맺고 중국시장에 진출한다는 복안을 밝혔다.

양안 간 ECFA 체결로 대만이 주목받고 있다. 중국에 진출하려는 기업이나,중국에서 이미 생산을 하면서 세계시장 진출 확대를 꾀하는 회사들 중 상당수가 '대만 루트'를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대만이 중국 비즈니스의 허브로 급부상하게 된 것이다.

◆'메이드 인 타이완'이 낫다

중국에서 제품을 생산해 수출하는 것은 장단점이 있다. 저비용 구조 덕으로 값싸게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반면 중국산 제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제품 판매에 장애로 작용하는 것이 현실이다. 폭스바겐이나 치루이의 전략은 대만을 활용해 중국 생산의 장점은 유지하되 단점을 보완하겠다는 것이다. 부품은 중국에서 싸게 만들고 완제품은 대만에서 생산,'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가 아닌 '메이드 인 타이완(made in Taiwan)'으로 해외시장에 진출하겠다는 것.

폭스바겐 관계자는 "대만의 전자산업이 잘 발달돼 있고 기술경쟁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자동차의 전자부품을 조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만 정부가 최근 법인세를 20%에서 17%로 인하한 것도 ECFA의 효과를 증폭시키고 있다. 치루이가 차이나 대신 타이완을 원산지로 택한 이유에도 미국이나 유럽시장 공략을 강화할 수 있고 비즈니스 환경이 좋다는 점에 착안한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 진출 우회로 부상

밴드왜건 효과(bandwagon effect · 편승효과)를 노리고 발빠르게 움직이는 기업들도 있다. 싱가포르의 오셔너스그룹이 대표적이다. 대만증시 상장회사로 세계 전복시장 1위 업체인 이 회사는 대만에 법인을 설립키로 했다. 게다가 중국자본이 밀려올 게 뻔한 일이어서 대만증시를 통해 중국자본을 끌어들이려는 외국기업도 생겨나고 있다. 싱가포르 타임스는 3~4개 회사가 대만증시 상장을 추진 중이라고 보도했다.

외국기업들만 바쁜 게 아니다. 대만의 전자회사 등도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고 설비 확정을 검토하고 있다. 대만에서 컴퓨터와 휴대폰용 부품을 판매하는 다밍전기 천밍위 총경리는 "중국 내 거래선에서 어떤 부품이 관세인하 대상이 되는지 문의가 폭증하고 있다"며 "대만의 회사들이 중국 수요 증가에 대비해 증산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석유화학업체들도 희색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석유화학업종은 거래선을 쉽게 바꾸기 어려운 특성이 있는데 관세가 인하된다면 중국업체들이 거래선을 물갈이하려 할 것"이라며 "대만기업들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좌(左)홍콩 우(右)대만

중국은 대만과 ECFA 체결로 홍콩 및 대만과 든든한 경제동맹을 맺게 됐다. 홍콩은 2003년 중국과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PA)을 체결,대중국 수출품에 대해 대폭적인 관세인하 혜택을 누렸다. 중국은 홍콩증시에 국영기업들을 상장시켜 글로벌 자금을 확보했고,최근엔 홍콩을 위안화 국제화의 전진기지로 활용하며 윈윈체제를 굳혀가고 있다.

중국은 이번 대만과 ECFA 체결로 제조업 분야의 부족한 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리춘난 광다증권 연구원은 "대만의 은행이나 병원이 중국 내에 설립된다는 것은 사실상 내국인끼리 경쟁체제가 갖춰진다는 것을 뜻한다"며 "경쟁을 통해 중국산업이 업그레이드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