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노베이션 포럼] "스타벅스 커피·애플 아이팟은 기업가 정신의 성공작"
[글로벌 이노베이션 포럼] "스타벅스 커피·애플 아이팟은 기업가 정신의 성공작"
"민간부문뿐만 아니라 공공부문도 끊임 없이 혁신해야 국가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

윌리엄 베이츠 미국 경쟁력위원회 부위원장과 라이네 헤르만스 핀란드 기술혁신청(Tekes) 디렉터,니오 분시옹 싱가포르 아시아경쟁력연구소장 등 국가경쟁력 부문 최고 전문가들은 지난 22일 서울 남산 밀레니엄힐튼호텔에서 열린 '글로벌 이노베이션 포럼 2010' 좌담회에 참석해 이같이 입을 모았다. 이들은 "미래 국가경쟁력은 각국이 보유한 인재와 지식의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며 "각국 정부가 인재에 더 많이 투자하고 공공부문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경쟁력의 요건과 혁신의 필요성,기술 중심 정책의 한계 등에 대한 이들의 진지한 토론은 당초 예정시간을 훌쩍 넘겨 1시간30분 가까이 진행됐다. 사회는 조동성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가 맡았다.

▲조동성 교수=이번 글로벌 이노베이션 포럼에서는 국가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정부와 기업의 혁신을 주요 이슈로 다뤘습니다. 혁신과 국가경쟁력의 관계가 무엇이라고 보는지요.

▲니오 분시옹 소장=싱가포르는 아주 작은 나라입니다. 주변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는데다 천연자원이나 기술,시장 등 이렇다 할 경쟁력 요인이 아무것도 없었죠.싱가포르는 살아남기 위해 끊임 없이 혁신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공공부문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국영기업들도 정부 보호에 기대지 않도록 하고 시장원리로 운영한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죠.

▲라이네 헤르만스 디렉터=핀란드는 1970년대부터 기술 부문에 많은 투자를 했습니다. 그 결과 노키아라는 빅 히트기업을 탄생시킬 수 있었죠.노키아는 과거 벌목산업 위주였던 핀란드에 '하이테크 국가'라는 이미지를 부여했습니다. 하지만 기술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가 늘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닙니다. 제2의 노키아는 쉽게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예전에 결과가 좋았다고 앞으로도 좋으라는 보장이 없다고나 할까요. 과거를 모방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기술적 능력에 대한 혁신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능력의 혁신도 요구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핀란드 정부가 기업들 간,그리고 기업과 대학 간 협업을 강조하는 것도 바로 혁신을 위한 것입니다.

▲윌리엄 베이츠 부위원장=세계는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신흥국 시장의 비중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고요.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도 바뀌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 기업들의 해외 매출액은 국내 매출액의 3배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는데요. 미국 기업들이 제때 혁신을 하지 못한다면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하락할 게 분명합니다. 국가경쟁력에 큰 영향을 줄 것임은 물론이고요.

▲조 교수=국가마다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법은 서로 다른 것 같습니다. 각국의 고유한 문화나 역사가 영향을 주기도 할 것이고요. 싱가포르의 경우 강력한 부패와의 전쟁을 벌인 것이 인상적이었는데요.

▲니오 소장=싱가포르의 경우 처음부터 깨끗함,청렴함을 강조하는 문화가 있었다기보다는 생존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강조됐다고 봐야 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싱가포르에 부패까지 만연하다면 아무도 이곳에 남아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과 기업을 붙들기 위해선 부패를 용납할 수가 없었다고 봐야죠.

▲헤르만스 디렉터=핀란드도 윤리를 강조하는 편이나 국민의 90%가 루터교라는 역사 · 문화적 공통점을 갖고 있었습니다. 1차대전 때 정치적 분열을 겪었으나 2차대전 중 소련이 핀란드를 침공했을 때(겨울전쟁 · 1939~1940년) 하나로 뭉치게 됐습니다. 이런 역사 덕분에 지금 핀란드의 경쟁력이 한층 강화됐다고 봅니다.

▲베이츠 부위원장=미국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기업가 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창의성을 중시하고 일에 대한 높은 헌신도를 강조해 왔습니다. 스타벅스는 그런 미국인들만의 경쟁력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타벅스는 매우 혁신적인 회사이지만 생산품은 그저 커피일 뿐입니다. 물론 좋은 커피이긴 하지만요. 애플의 아이팟도 MP3플레이어일 뿐이지만 외장을 독특하게 만드는 등 고유의 이미지를 창조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조 교수=한국의 경우 정부 · 관료의 경쟁력이 지난 5년 사이 세계 32위에서 43위로 곤두박질쳤습니다. 공공부문 경쟁력을 키우려면 공무원들의 사고부터 바뀌어어야 한다는 지적이 있는데요.

▲니오 소장=싱가포르는 공무원들의 경쟁력이 뛰어난 편입니다. 한국과 싱가포르를 같은 잣대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원칙'을 일반화할 수는 있다고 봅니다. 싱가포르 공무원들은 기업가 정신이 탁월합니다. 생존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유연하게 사고하고 시장 원리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베이츠 부위원장=민간 부문뿐만 아니라 공공 부문도 끊임 없이 혁신해야 합니다. 공공 부문에서도 리스크를 더 감내하고 적극적으로 기업을 지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헤르만스 디렉터=핀란드는 스칸디나비아의 복지국가 제도를 갖고 있습니다. 세율이 높고 모든 이들에게 동등한 교육기회를 제공합니다. 이것은 분명 핀란드 경쟁력의 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2년 전 고용경제부가 발표한 새 국가혁신전략은 '국가가 운영하는' 요소를 줄이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의료보험 체계도 바꿀 계획이고요. 핀란드는 작은 국가이기 때문에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다고 봅니다.

▲조 교수=국가경쟁력은 개개인의 경쟁력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도 있는데요. 인재 경쟁력의 중요성은 최근 들어 더욱 강조되는 분위기입니다만.

▲니오 소장=그렇습니다. 싱가포르 정부는 처음부터 '싱가포르의 기업'을 키우려 하기보다 '싱가포르의 사람'에 투자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들을 갖추면 이들이 어느 나라의 기업에서 일하든 싱가포르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특정 상품을 만들어 내는 국가가 아니라 그런 상품을 만드는 사람을 키우는 나라가 되길 바랐다고 할 수 있지요.

▲헤르만스 디렉터=핀란드도 인구가 500만명 밖에 되지 않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한 자원이지요.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높은 수준의 지식을 제공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학 등록금이 없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입니다.

▲베이츠 부위원장=미국은 전 세계에서 연구 · 개발(R&D)에 가장 많이 투자하는 나라죠.하지만 이 부문 투자 증가율은 지난 20년간 매우 낮았습니다. 게다가 요즘 미국 청소년들의 수학 · 과학 실력이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15세 청소년들의 실력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선 21위,전 세계에선 25위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것이 나중의 미국의 경쟁력을 갉아먹을 수 있습니다.

▲조 교수=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가경쟁력에 대한 인식도 많이 변했는데요. 새롭게 강조되는 경쟁력 요건이 있다면 무엇을 꼽을 수 있겠습니까.

▲헤르만스 디렉터=핀란드의 주력 생산품이 나무였을 때는 베어낸 나무가 몇t이냐로 나라의 경쟁력을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한 나라를 평가한 방식을 다른 나라에 적용하기 곤란하고,과거의 잣대를 사용하기도 어렵죠.쉽지 않은 문제지만 '우리 기업들이 어떻게 소비자들을 만족시키고 있는가'와 같은 요소들,특히 지적자본(intellectual capital)을 평가하는 방법을 찾아낼 필요가 있습니다.

▲니오 소장='지식'의 중요성이 커진다는 데 공감합니다. 싱가포르는 그동안 인재 교육 투자에 집중했습니다. 앞으로는 '지식을 어떤 분야에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관건이라고 봅니다.

▲베이츠 부위원장='무엇이 국가경쟁력인가'라는 것에 대한 정의가 변하고 있습니다. 과거 미국은 기업이 성공해서 사람들을 더 고용하고 공장을 더 지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제조업 기반이 약화돼 기업이 성장하더라도 고용은 그리 많이 이뤄지지 않습니다. 이것은 기업의 경쟁력과 국가경쟁력을 구분해야 할 필요성을 보여줍니다. 각국 정부의 정책이 상황에 맞게 계속 바뀌어야 한다는 거죠.평생고용 개념이 사라진 만큼,국가는 사람들이 기업의 새 비즈니스 모델에 적응할 수 있도록 재교육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합니다. 개인과 정부뿐만 아니라 교육기관도 '평생학습 시대'에 맞춰 지속적으로 변화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정리=이상은/강경민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