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사는 아시아나 히스패닉계 사람들에게 렉서스는 한때 성공의 대명사였다. 렉서스를 보유하는 것은 고단한 이민자 생활의 로망이요,1년에 10만달러 이상을 버는 고소득의 상징이었다. 지금은 경쟁차종의 출현과 차량의 고급화 추세 등으로 예전만큼의 명성을 갖고 있지 않지만 여전히 렉서스는 미국 중산층들이 가장 갖고 싶어하는 차로 꼽힌다.

물론 렉서스의 브랜드 가치가 전통의 명차그룹인 독일의 벤츠나 BMW를 넘어선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가격도 전반적으로 약간 낮은 편이다. 하지만 중후하면서도 스마트한 디자인에 일본 자동차 특유의 기술력이 응집된 만큼 앞으로 이 차의 경쟁력을 넘어설 차가 출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최고를 만들자"

도요타는 렉서스를 미국시장에 출시하기까지 엄청난 공을 들였다. 1957년 일본업체로는 처음으로 크라운 승용차를 미국에 내놓았던 도요타는 1970~1980년대 두 차례의 석유파동과 스태그플레이션을 겪으면서 확고한 교두보를 마련했다. 특히 제너럴모터스(GM) 포드 크라이슬러 등의 빅3를 제치고 소형세단 시장에서 선두주자의 자리를 탄탄히 다지는 데 성공했다.

코롤라와 캠리 등 우리에게도 익숙한 글로벌 베스트 셀링카들은 뛰어난 품질을 앞세워 충성스런 고객군을 창출해나갔다. 하지만 이즈음 도요타는 자신들의 고객이 보다 비싸고 고급스러운 차를 찾아 브랜드를 이탈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고급차 출시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렉서스의 탄생 시점은 1983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도요타 에이지 회장은 비밀리에 중역회의를 소집하고 "세계 최고와 어깨를 겨루는 품격있는 차를 창조한다"는 모토 아래 'F1 프로젝트' 가동을 지시했다. 여기서 F는 각 브랜드 최고의 차량을 일컫는 '플래그십(flagship:최고를 뜻함)',숫자 1은 넘버원 자동차를 뜻했다. F1 프로젝트는 도요타의 경험과 기술을 최대한 반영하되 기존 제품과는 확연히 차별되는 완전하고도 완벽한 브랜드를 창조하는 데 목표를 두었다.

그로부터 6년 뒤인 1989년 무려 1400명의 엔지니어와 2300명의 기술자,그리고 10억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이 투입된 렉서스 브랜드가 공개됐다. '렉서스'라는 브랜드명은 고급스러움을 뜻하는 '럭셔리(luxury)'와 '법''기준'을 뜻하는 라틴어 '렉스(lex)'의 합성어로,'럭셔리(luxury)의 기준(스탠더드)'이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우리 돈으로 1조원이 넘는 비용이 든 이유는 철저하고도 치밀한 시장조사 때문이었다. 도요타는 수백명의 주재원들을 주요 거점 도시에 상주시키며 미국 중산층의 기호와 성향을 정밀하게 분석했다. 1년 이상 주재한 직원들이 써올린 장문의 보고서는 렉서스 개발과정에 촘촘하게 반영됐다.

◆JD파워 평가 86회 1위

1989년 9월1일,렉서스의 첫 모델이자 기함인 'LS400'이 미국에 출시됐다. 이 모델은 4ℓ 250마력의 엔진을 장착하고 정지상태에서 60마일까지 7.9초 만에 주파했으며 0.29의 공기저항계수를 기록했다. 이 같은 수치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것이었다. 경쟁 브랜드의 모델보다 더 빠르고 더 우수한 연비를 가진 것이었다. 실내는 세계 최고의 오디오 시스템을 갖추었고 미국 시장에서 출시된 모델 중 가장 조용한 것으로 평가됐다.

렉서스가 맨 처음 시장에 나왔을 때 미국 포천지는 "중산층을 위한 차에 주력해오던 도요타가 상류사회를 겨냥하고 나섰다는 것은 맥도날드가 비프 웰링턴 같은 고급 요리에 도전하는 것과 같다"고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렉서스는 보닛 위에 샴페인 잔을 놓고 달리는 광고를 통해 승차감이 뛰어난 차라는 것을 집중 부각시켰고 "영혼을 울릴 뿐,다른 진동은 없다"는 광고 문구를 시장에서 스스로 입증해냈다.

업계를 더욱 놀라게 한 점은 세계 고급차 시장을 양분하던 독일계 브랜드의 경쟁모델보다 3만달러 이상 저렴했다는 점이다. 벤츠 BMW와 맞먹는 품질과 성능에 가격은 훨씬 저렴했던 것이다. 세계적인 자동차 시장조사업체인 JD파워가 렉서스를 품질 및 서비스 지수에서 무려 86차례나 1위에 올려놓은 배경이기도 하다.

렉서스는 진출 2년 만에 벤츠를 제치고 미국시장에서 판매되는 럭셔리 브랜드들 중 가장 높은 판매액을 올리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했고 ES와 SC,IS,RX 등 다양한 차종을 추가하며 미국 내 럭셔리 브랜드 시장에서의 위상을 강화해 나갔다. 특히 20대를 고객층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새로운 모델 라인업을 구축하거나 컨버터블 카를 내놓음으로써 다른 고급차 업체들이 시도조차 해 본 적이 없는 특화전략을 펼쳤다. 실제 쿠페 컨버터블 SUV 등의 다양한 모델들은 이미 전 세계 젊은이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결과적으로 렉서스는 종전의 실용적이고 단단한 도요타 차들의 장점을 흡수하면서도 시장과 고객이 원하는 고급스러운 차별화를 동시에 구현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세계 자동차업계에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했다고 볼 수 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