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얼굴을 펴고 있다. 미 상원과 하원이 FRB의 권한과 독립성을 대부분 유지하는 쪽으로 금융감독개혁 법안 최종안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법안 단일화 작업을 벌이는 상원 의원들이 지난 17일 '리틀 FRB'라고 불리는 뉴욕 연방은행의 총재를 백악관이 임명토록 한 상원 법안 조항을 표결에 부쳐 10 대 2로 폐기했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대신 FRB 내부적으로 뉴욕 연방은행 총재를 선임하게 해 독립성을 인정해주기로 했다. FRB는 대통령이 총재를 임명하면 정치 바람을 탈 수밖에 없다고 반대해왔다.

상원과 하원의 법안 단일화 작업팀은 또 미 의회 소속 회계감사원(GAO)이 FRB의 통화정책을 정기적으로 감사할 수 있게 하는 조항도 거부했다. 벤 버냉키 FRB 의장과 티모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통화정책에 대한 감사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해친다며 강력히 반대해왔다.

단일화 작업팀은 다만 GAO가 FRB의 위기대응 정책 결정을 조사할 수 있는 정도의 제한적 권한을 갖도록 했다. 은행들이 FRB의 재할인 창구를 통해 긴급자금을 대출받은 내역을 FRB가 대출 후 2년 뒤 공개토록 하는 절충안이 마련됐다.

FRB는 현재 재할인 창구 대출 내역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단일화 작업팀은 FRB가 대형 금융사뿐만 아니라 중소형 은행에 대한 감독권도 그대로 갖도록 했다.

WSJ는 12개 지역 연방은행 총재 선임에 민간 은행들의 개입도 차단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지역별 연방은행은 각각 9명의 이사를 두고 있다. 이 가운데 민간은행 대표가 3명이며 나머지 6명은 재계와 공공부문 인사들로 채워져 있다. 법안 단일화팀의 절충안은 6명의 공공부문 인사들과 워싱턴의 FRB 이사회가 총재 선임을 결정하는 내용을 담을 것으로 예상된다.

단일화팀에서 쟁점이 되는 부분은 FRB가 파생금융상품 청산소에 긴급 대출을 할 수 없도록 금지하는 조항이다. FRB는 긴급 대출이 금지되면 금융위기시 FRB가 대응할 수 있는 손발이 묶인다고 반대한다.

미 의회가 FRB를 개혁 대상으로 올린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막지 못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FRB의 권한을 대폭 축소해 통화정책에만 집중토록 하고,통화정책도 의회가 감사토록 한다는 게 상원과 하원의 당초 안이었다. 그러나 이에 맞서 버냉키 의장과 12개 지역 연방은행 총재들은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권한을 유지해야 한다면서 의회 로비를 벌여왔고 상당한 성과를 거둔 셈이다.

한편 최근 영국도 분산돼 있는 금융감독권을 중앙은행(BOE)에 집중시키는 대수술을 단행키로 했다.

이에 따라 기존에 금융감독 기능을 수행하던 금융감독청(FSA)은 2012년까지 금융회사들이 기본적인 각종 법규를 준수하는지 여부만 살펴보는 기구로 축소되며 은행,투자은행,보험사 등에 대한 감독권을 행사하고 있는 FSA의 기존 조직 대부분은 BOE로 이관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머빈 킹 BOE 총재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권한을 가진 중앙은행 총재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국내에서는 은행 감독 권한을 놓고 장기간 맞서온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이 여전히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