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경제정책이 '부양'에서 '긴축'으로 방향을 굳혔다. 경기가 충분히 살아났다는 판단 때문이라기보다 '약한 고리'(남유럽)에서 터진 재정위기의 확산을 막고 '하나의 유럽'을 지켜내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최근 재정위기가 남유럽에서 동유럽으로 전염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불러일으켰던 헝가리는 8일 은행세 도입과 정부지출 축소등의 긴축안을 발표했다. 재정적자 문제가 당장 '발등의 불'이 아닌 독일조차도 선제대응 차원에서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섰다.

이 같은 강도 높은 긴축조치가 또 다른 경기침체를 야기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유럽 각국의 대응책이 시장 신뢰를 되살릴 수 있을지 관심사다.

◆단기처방:재정안정기금 조성

유로존(유로화 사용 16개국) 재무장관들은 지난 7일 룩셈부르크에서 그리스 등 회원국의 구제금융을 위한 4400억유로의 재정안정기금 마련 방안에 최종합의했다. 이로써 지난달 10일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이 합의한 총 7500억유로(유로존 4400억유로,IMF 2500억유로,EU집행위 600억유로)의 재정안정기금 가운데 유로존 몫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조달할지가 확정됐다. 유로존은 3년간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특수목적회사를 설립해 각국의 보증하에 채권을 발행,이 자금으로 도움이 필요한 유로존 국가들에 대출해주기로 했다. 각국이 보증해야 할 몫은 유럽중앙은행(ECB) 지분만큼 할당되며 채권발행금액의 120%까지 보증하게 된다.

IMF는 유로존의 재정안정기금 합의에 환영을 표시하면서도 보다 근본적인 개혁을 촉구했다. IMF는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위기관리가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정책의 대안이 될 수는 없다"며 "유럽경제통화동맹(EMU)을 튼튼히 할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앙헬 구리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도 캐나다에서 열린 한 컨퍼런스에서 "재정위기 국가들은 어떻게 재정균형을 맞출지에 대한 방안을 시장에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기대책:긴축 통한 재정적자 감축

유럽 스스로도 '근본대책'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꺼내든 것이 '강력한 긴축정책'이다. 미국 등에서 제기하는 '경기부양'을 통한 해법이 아니라 "부채문제는 씀씀이를 줄여야 한다"는 근본 처방책을 택한 것이다.

지난주 새 정부 관계자가 국가부도(디폴트) 가능성을 언급해 글로벌 금융시장을 뒤흔들었던 헝가리는 사태진화를 위해 서둘러 은행세 도입등 긴축안을 내놨다.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신임총리는 8일 의회에서 IMF가 승인한 올해 재정적자 목표치(국내총생산의 3.8%)를 맞추기 위해 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들에 세금을 부과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은행세 도입에 따라 올해 금융회사들로부터 확보할 재정수입이 130억포린트(4600만유로)에서 2000억포린트(7억유로)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빅토르 총리는 또 공공부문의 총 인건비 15% 절감과 정부부처 및 공적기금 지출 축소 등을 통해 1200억포린트(약 4억2000만유로)의 비용을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앞서 머톨치 죄르지 경제장관은 올해 재정적자 목표치를 맞추려면 국내총생산 대비 1~1.5%(9억~14억유로)규모의 재정적자 감축이 필요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영국도 긴축모드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연일 강력한 긴축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캐머런 총리는 오는 22일 1560억파운드(1900억유로)에 달하는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긴급 예산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영국은 엄청난 재정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며 "지금보다 더 빨리 적자를 감축하는 방안을 포함해 중기적으로 강력한 부채조정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마저도 2014년까지 총 800억유로의 예산을 줄이기로 했다. 은행세와 항공세를 신설하고,에너지 산업에 대한 세제지원 축소,국방개혁 등으로 세수를 늘리는 한편 각종 행정 및 복지비용은 축소키로 했다. 독일의 긴축에 대해 미국과 유럽 다른 나라들은 내심 불만이다. 세계경제 회복을 위해선 형편이 나은 독일이 내수를 키워줘야 하는데 오히려 앞장서서 긴축에 나서기 때문이다.

박성완/김동욱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