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이 유로존(유로화 사용 16개국)의 재정위기가 금융 및 경제위기로 번질 가능성에 대해 경고했다.

1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ECB는 최근 발간한 '유로존 금융안정 보고서'에서 은행권의 '제2 자산상각 물결'이 예상된다며 유로존의 금융 부문이 과도한 재정적자에서 비롯된 '전염'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제2의 자산상각 물결' 온다

ECB는 내년 말까지 유로존 은행들이 추가 상각해야 할 부실자산 규모가 1950억유로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미 보고된 자산상각과 손실에 대한 충당금 등을 고려할 때 올해 약 900억유로,내년에 약 1050억유로의 추가 자산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ECB는 또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불거진 2007년 이후 올해 말까지 유로존 은행권 자산상각 규모를 5150억달러로 추정했다. 이는 지난해 12월의 전망치 5530억유로보다는 소폭 줄어든 수치다.

ECB는 또 보고서에서 "정부의 재정적자 급증은 전반적인 자금조달 비용을 상승시켜 유로존의 경제성장 전망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언급했다. 각국 정부가 앞다퉈 국채 발행에 나서다보면 민간의 자금조달 및 투자활동이 위축되는 '구축 효과(crowding-out effect)'가 나타날 수 있다는 얘기다.

유로존 은행권의 경우 2012년까지 약 8000억유로의 채권을 차환 발행해야 할 것으로 추정됐다. ECB는 기업의 자금조달 금리는 국채 수익률과 연계돼 있어 국가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되면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1일 런던 외환시장에서 유로화 가치는 유로존 부채와 재정적자 위기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면서 개장 직후 유로당 1.2115달러를 나타내 2006년 4월 이후 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유로화 운명…4가지 시나리오


유로존 경제가 흔들리면서 유로화의 운명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와 관련,출범 11년 만에 위기를 맞은 유로화의 운명에 대한 4가지 시나리오를 소개했다.

첫 번째로 유로존이 안정을 되찾지만 근본 병폐 처방에는 실패한다는 예측이 있다. 현실성 있는 전망이다. 지출 삭감과 세금 인상 등 정부의 노력과 ECB의 지원으로 재정적자는 줄겠지만 통화동맹의 근본 문제를 해소하지 못해 비슷한 일이 재발하고 유로화는 취약한 성장 전망 등으로 결국 퇴락의 길을 걷게 된다는 시나리오다.

유로화가 취약성을 드러내며 전망이 의문시되는 통화로 전락할 것이란 비관론도 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연합(EU)의 긴축 조치가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그리스와 포르투갈,스페인의 사회 불안이 극심해지고 프랑스와 독일 은행에 대한 신뢰는 추락하게 된다. 유로존 전체 경제가 침체되고 인플레 압력이 심해질 것이란 점을 감안하면 가능성이 없는 시나리오가 아니다.

최악의 경우 유로화가 해체될 수도 있다. 최소 1개 이상의 국가가 유로존을 탈퇴하거나 축출될 것이라는 가정에 기반한다. 그리스 경제 붕괴와 유로존 국가들의 침체 심화,높은 실업률,개혁에 대한 반발 등이 복합 작용할 경우 나타날 수 있다. 이때 유로존의 해체를 대비하지 못한 만큼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최근의 사태를 계기로 각국 정부가 재정 상태 균형을 유지하고 경제 효율성을 개선해 유로존이 세계경제 성장을 견인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장밋빛 낙관론도 있다. IMF 및 EU의 지원과 수년간의 긴축정책을 통해 경쟁력을 되찾아 '전화위복'이 된다는 것이지만 현실성은 높지 않다.

박성완/김정은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