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식 경영' 배우기 열풍] (10·끝) "강소기업 노리는 한국中企, 교토기업 '롤 모델'로 삼아라"
●참석자
◇노노무라 치카이 신영와코루 전무
◇이경규 호리바코리아 사장
◇이우광 삼성경제연 일본연구팀장
◇한정현 KOTRA 일본사업단장
◇양준호 인천대 교수

한국경제신문은 교토식 경영의 장점을 한국 기업에 접목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교토식 경영'에 대한 전문가를 초청해 좌담회를 열었다. 좌담회에는 일본 경제와 교토경영의 현장 전문가인 노노무라 치카이 신영와코루 전무,양준호 인천대 교수,이경규 호리바코리아 사장,이우광 삼성경제연구소 일본연구팀장,한정현 KOTRA 일본사업단장이 참여했다. 참여자들은 교토기업이 한국의 중견기업과 중소기업이 강소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참고할 만한 '롤(Role) 모델'이라고 입을 모았다.

-교토기업이 독특한 경영 특징을 갖게 된 배경은.

▲노노무라 치카이 신영와코루 전무=교토기업은 틈새시장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자기들끼리 사업영역이 겹치지도 않는다. 카리스마 있는 오너에 의한 톱-다운(Top-Down) 경영 방식도 서로 닮았다. 성장단계에서 빨리 해외에 진출했고,조직을 작은 단위로 쪼개 관리한다. 현금흐름을 중시하다 보니 차입경영을 하지 않는다.

이렇듯 독특한 교토식 경영의 배경에는 일본 역사가 자리잡고 있다. 교토는 1868년 메이지유신으로 수도가 도쿄로 옮기기 전까지 1000년간 일본의 수도였다. 일본 최고란 자부심이 강하고,산업기술과 문화가 집적돼 있다. 끊임없이 계속된 권력 투쟁 탓에 자기 몸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생존본능도 강하다. 이런 역사적 배경이 독특한 경영 특징을 만들어냈다.

▲양준호 인천대 교수=교토기업들이 독창성에 대해 집착하게 된 건 '반골 정신' 때문으로 본다. 교토 사람들은 교토를 일본의 영원한 수도,일본 문명의 메카라고 생각한다. 그 콧대 높은 자존심이 도쿄에서 생산되는 상품 · 기술에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된 근본 원인이다. 교토만의 독창적인 기술만을 고집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교토의 챔피언 기업들은 자기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술력을 가지게 됐다.

-교토 기업이 일본의 일반적인 기업과 다른 점은.

▲이우광 삼성경제연구소 일본연구팀장=평균적인 일본 경영자는 의견조정형 스타일이다. 대규모 투자나 신규사업 진출 등을 할 때 과감하게 리스크를 감수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교토기업은 오너가 과감한 결정을 한다. 일반적인 일본기업과 달리 세계 1위를 지향했다는 점도 다르다.

그런 면에서 교토기업은 일본기업보다 한국기업과 닮았다. 한국기업도 카리스마를 가진 오너가 위기상황에서 신속 과감한 결정을 내려 세계적인 기업이 됐다. 또 세계시장을 상대로 승부를 걸었다. 한국은 시장이 좁아 일찍 해외를 겨냥했다. 다만 기술자출신 오너가 많다는 것은 한국기업과 다른 점이다.

▲한정현 KOTRA 일본사업단장=도쿄 오사카 나고야 후쿠오카 등 일본의 4개 무역관에서 근무해 봤다. 일본경제가 잘 나가던 1980년대에 연공서열 평생고용 같은 경영 방식이 주목을 받았다. 1990년대 이후엔 세계 1위 자동차기업으로 부상한 도요타자동차의 군살 없는 생산방식에 이목이 집중됐다. 도요타자동차가 리콜사태에 직면하자 이번에는 교토기업이 주목받고 있다. 교토기업은 확실히 평균적인 일본기업과 다르다. 거래처 및 하청업체와의 관계가 개방적 · 수평적이다.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과 닮았다.

-교토기업들은 계속 잘나갈까.

▲이경규 호리바코리아 사장=교토기업은 외형을 중시하지 않는다. 세계 1등이 더 중요한 가치다. 1등 자리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교토대학도 여기에 힘을 보탤 것이다. 우수한 이공계열 인재들을 끊임없이 공급한다. 선배가 후배를 이끌어 주는 문화는 새로운 벤처기업의 탄생을 돕는다. 교토에선 선배 창업자가 후배 창업자를 자발적으로 도와주는 문화가 형성돼 있다. 이런 요소들이 없어지지 않는 한 교토기업은 강소기업의 명성을 이어갈 것이다.

▲양준호 교수=교토기업은 승자만 누릴 수 있는'네트워크 이익'을 마음껏 누리고 있다. 예를 들어 적극적인 기업 인수 · 합병(M&A)을 통해 동종업계 타사의 기술 조직 노하우 인재 등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있다. 이게 교토기업의 또 다른 경쟁력의 원천이다. 앞으로도 세계 챔피언 자리를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우광 팀장=교토기업의 강점은 우리나라 기업처럼 모듈에 강하다는 것이다. 모듈은 쉽게 표현하면 중간재나 서비스의 표준화를 의미한다. 휴대폰 PC 등이 모듈형 산업의 대표적인 예다. 교토기업은 처음부터 모듈화된 제품을 만들었다. 고속 성장의 배경이 거기에 있다. 디지털 시대엔 모듈화가 경쟁력이다. 교토기업이 계속 잘나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앞으로 과제는 외형이 커지더라도 계속 높은 영업이익률을 유지할 수 있느냐다.

▲한정현 단장=교토엔 유난히 장수기업이 많다. 떡 부채 술 반찬 등을 만드는 회사들 중에선 수백년 된 기업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장 오래된 기업은 1000년도 넘었다. 장수비결은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사업을 한다는 점이다. 무리해서 덩치를 키우지 않았다는 얘기다. 또 다른 비결은 뛰어난 기술력과 관련된 사업다각화다. 이는 전 세계 장수기업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점이기도 하다. 교토기업은 장수할 수밖에 없다.

-우리 중견기업이 배울 점은.

▲노노무라 전무=오너(또는 경영자)와 직원 사이에 거리감이 없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경영자와 직원이 직접 이야기할 기회가 많기 때문에 가능하다. 예를 들어 호리바제작소의 경우 최고 고문과 사장이 매월 생일을 맞은 직원들을 축하하면서 경영이념과 회사상황에 대해 이야기한다. 경영자의 생각이 직원들에게 자연스럽게 전달된다. 직원들은 자기가 회사에서 인정받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된다. 또 경영자와 동일한 생각을 가지게 된다. 예를 들어'내가 세계 1등 제품을 만든다'는 생각을 한다. 저절로 동기부여가 된다. 돈만 동기부여 수단이 된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다.

▲한정현 단장=교토기업이 일본 전체 제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교토는 인구나 산업규모가 크지 않을 뿐만 아니라 관광도시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주목할 수밖에 없는 것은 세계시장을 주름잡는 강소기업이 있기 때문이다. 강소기업은 산업의 허리다.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문제점이 강소기업이 적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교토기업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교토기업과 협력관계를 모색하는 것도 좋다. 부품을 공급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기술력이 세계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다. 협력은 교토기업을 위해서도 도움이 된다. 교토기업은 다른 일본기업과 마찬가지로 부품을 자체조달해 사용하는 경향이 강하다. 일본이 글로벌 파트너로서의 취약점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다. 상생을 위해 부품의 아웃소싱을 고려할 때가 됐다. 지리적으로 가깝고 기술력이 뛰어난 한국 중소기업과 협력관계를 맺는 게 좋은 방법이다.

▲이경규 사장=교토사람은 속마음과 표현이 다르다. 1200년간 일본의 수도였던 만큼 손님접대 등의 문화가 발달돼 있어서 그렇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양반 문화다. 이를 이중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특징을 이해하고 접근하면 오히려 같이 일하기가 편하다. 교토기업과 거래하는 기업이나 거래를 고려하는 기업들이 참고할 만하다.

▲양준호 교수=중소기업 문제의 핵심은 사람이다. 특히 카리스마를 가진,독창적 사고를 하는 경영자를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기업가정신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사실을 교토식 경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교토를 비롯 미국 실리콘밸리 스웨덴 시스타 등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산 · 학 · 관 클러스터들은 대부분 기업이 클러스터를 주도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경기도 파주 수원,충남 아산 등은 교토 클러스터와 같이 발전시킬 수 있는 여지가 많다.

틈새시장을 노려 승부를 건 점도 배워야 한다. 대기업이나 경쟁사가 하지 않는 분야에 도전해 현재의 위상을 구축했다. 교토기업의'선(先) 글로벌, 후(後) 내수' 전략도 참고할 만하다. 교토기업은 정부 지원이나 계열기업에 의존하지 않고,스스로 역량을 길러 세계시장부터 개척했다.

정리=조성근 기자 tru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