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반대로 진통을 겪어온 유럽연합(EU)의 헤지펀드 규제에 가속도가 붙었다.

17일 주요 외신들은 EU 각국이 17~18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재무장관회의에서 헤지펀드와 사모펀드의 투명성 강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규제안을 놓고 표결을 실시키로 했다고 보도했다. 헤지펀드 규제법안에 대한 표결은 지난 3월 EU 재무장관회의에 상정됐으나 영국의 반대로 한 차례 연기된 바 있다. 영국은 이번에도 반대 입장을 밝혔지만 표결을 막진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와 독일이 주도적으로 마련한 헤지펀드 규제안은 영국과 체코 등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EU 국가들이 찬성하고 있어 표결에 부쳐지면 통과가 유력하다.

조지 오스본 신임 영국 재무장관이 EU 순회의장인 엘레나 살가도 스페인 재무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연립정부 구성에 따른 준비 부족을 이유로 헤지펀드 법안 표결 연기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오스본 재무장관의 한 측근은 선데이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영국 정부는 헤지펀드 규제에 반대하지만 이미 법안 통과를 위한 작업이 많이 진척돼 이를 막기는 힘들 것"이라며 "이번 싸움에선 우리가 졌다"고 말했다.

APF통신에 따르면 영국 런던에는 전 세계 헤지펀드의 80%가 본사를 두고 있다. 헤지펀드를 규제할 경우 '금융중심지'라는 런던의 위상이 약화될 수밖에 없어 영국은 처음부터 규제 도입을 강력히 반대해왔다. EU 규제안은 헤지펀드의 투명성 강화를 위해 거래와 부채내역 등을 금융당국에 보고하고 투자전략과 리스크관리 시스템,자산가치 평가 방법까지 공개토록 요구하고 있다. 또한 잠재 손실을 감당할 수 있게 최소한의 자본을 보유하도록 하는 규정도 들어가 있다.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는 3월 "EU가 추진하는 헤지펀드 규제안은 금융회사들에 최소 67억달러의 비용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미국도 자국 펀드들의 유럽 진출이 차별을 받을 수 있다며 영국과 한목소리를 내왔다. 이 규제안엔 EU 밖에 소재를 두고 있는 펀드들이 EU 역내에서 활동하기 위해선 국가별로 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EU 재무장관 표결에 앞서 17일엔 국제적으로 합의된 조세정보 공개 규정을 따르지 않는 국가의 헤지펀드 활동을 금지할 수 있는 권한을 유럽 규제당국에 부여하는 내용의 별도 법안이 유럽의회에서 논의됐다. 이 두 규제안은 조율을 거쳐 연말께 단일안으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