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본 언론들은 한국의 삼성전기가 무라타제작소의 아성을 깰 수 있을지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삼성전기가 무라타제작소의 주력제품 중 하나인 적층세라믹콘덴서 시장에서 세계 2위로 올라서면서 무라타제작소를 맹추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기는 그동안 무라타제작소 TDK 다이요 등 일본 3사에 이어 이 부문 4위를 달렸다. 1위인 무라타제작소가 지나온 길을 뒤따라오다 보니 일본 전자부품 제조업체와의 기술 격차가 컸다. 그러나 지각 변동은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한 이후 나타나고 있다. 삼성전기는 2008년 한때 분기 시장점유율 2위를 기록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연간 기준으로 시장점유율 2위 자리를 굳혔다.

부품소재업계는 지난해 시장점유율을 무라타제작소 32%,삼성전기 20%,TDK 18%,다이요 17% 등으로 추산하고 있다. 삼성전기가 1980년대 후반 적층세라믹콘덴서 사업을 시작한 이래 연간 기준 '빅3'에 오른 것은 20여년 만의 일이다. 만년 4등이 순식간에 2위 자리까지 치고 올라온 것이다.


삼성전기가 이처럼 약진하고 있는 것은 공격적인 설비투자와 연구개발로 격차를 좁히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지속되고 있는 엔화 강세로 가격 경쟁력이 올라간 것도 큰 도움이 됐다. 닛케이비즈니스 등 일본 언론들은 전자부품업계도 반도체 D램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1980년대 세계시장점유율 80%를 자랑하던 일본 D램 메이커들은 PC용 저가격 시장에서 한국과 대만업체에 밀려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무라타제작소도 한국 업체의 약진에 신경이 쓰이는 분위기다. 무라타 쓰네오 사장은 2008년 닛케이 일렉트로닉스와의 인터뷰에서 "삼성전기가 적층세라믹콘덴서 시장을 집중 공략하고 있는 것이 부담스럽다. 이 시장이 3강 구도에서 4강 구도로 재편될 것 같다"고 예상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삼성전기에 질 일은 절대 없다"고 단언했다. 다른 분야에선 기술 격차가 견고한 데다 기술개발과 조직혁신을 끊임없이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라타 사장은 맹주 자리 고수를 위한 해답을 조직 내부에서 찾았다. 지난 3월 닛케이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적은 한국 기업이 아니라 '사내의식'"이라고 단언했다. 계속된 호경기에 조직이 비대화되면서 구성원들의 경영참여 의식과 위기 의식이 옅어졌다는 것이다. 무라타제작소는 따라서 2005년부터 조직개혁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다른부서의 업무를 1주일씩 체험하는 '사내인턴십' △부서를 초월해 신제품이나 신규사업을 기획하는 '미래 활동(MIRAI)' △중견간부가 부서를 초월해 신입사원의 고민거리에 대해 상담해주는 '키다리아저씨' △전문지식을 가진 스태프가 사내 곳곳을 찾아가 강연하는 '찾아가는 교실' △사원이 사장에게 직접 개혁안을 제시하는 '사내제안활동' △사내 과장 차장이 조직활성화에 대해 고민하는 '차장 · 과장 회의' 등을 통해 회사에 긴장감과 생기를 불어 넣고 있다.

신규 분야 진출도 적극 모색하고 있다. 특히 에너지 바이오 등 신성장 시장의 부품산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는 기술의 자체 개발을 고집해 왔지만,앞으로는 외부기술도 적극 활용할 방침이다. 무라타 사장은 "비효율은 불황에 다 털고 간다. 위기야말로 조직을 재정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강조했다.

교토=조성근 기자 truth@hankyung.com